"새로운 경로를 안내하겠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기보다
우연히 만난 길로 나아가는 나의 경로.
그게 요즘 내 인생의 최대 재미인 것 같다.
어느 순간 미지의 것에 대해 미리 판단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힘들 것 같거나 내가 하기에 버거울 것 같은 일들이어도 겁은 낼지언정 나에게 온 기회는 대부분 잡는 편이다. 그 기회가 나에게 이득으로 다가오던 말건은 뒷전이다. 나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 그 자체에서 의미가 있겠거니 하고 '우선 하고' 본다. 아님, 말고.
<모든지 경험해 봐야 안다>라는 고집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게 된 과거의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1. 그래도 <뉴욕>은 가봐야지
스무 살, 휴스턴 대학교에서 랭귀지 스쿨(어학당) 진학을 시작으로 휴스턴에 있는 대학 편입을 목표로 했던 나는 대학교 필수과목을 우선 수료하는 휴스턴 커뮤니티 컬리지(이하 HCC)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어학당에서 9개월, 그 후 HCC를 1년 다니고 바로 대학교에 편입지원을 하려는데 최소 학점이 1점이 모자라서 HCC를 1년을 더 다니게 된다. 그렇게 3년 만에, '드디어 대학다운 학교를 가는가!' 할 때쯤, 휴스턴 한인타운에서 배포하는 한인신문 한편에 '포트폴리오 학원'이라는 낯선 광고를 보게 된다. 건축 대학교를 지원하려면 '포트폴리오'가 필요한데, 그때는 그저 4점 만점에 3.82점의 나의 높은 성적과 한국에서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린 그림 제출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상담이라도 해볼까, 해서 편입지원 마감일까지 약 한 달 남짓 남은 무렵에 한인 포트폴리오 학원을 찾아갔다.
"휴스턴에 있는 학교 진학을 원하는 거라면...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네. 한 달 동안 준비해 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미대진학을 위한 작품들이라 건축대학을 위한 작품들이 필요했던 나는, 다행히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원장님의 말씀에 그 학원을 딱 한 달만 다녀보기로 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갔던 학원 첫날. 교포 혹은 유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처음 온 나에게 살갑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의 소개를 모두 듣던 나는 잠시 멍하니 내 이젤 앞에서 얼이 빠져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뉴욕이나 아이비리그, 시카고 등 대도시에 위치한 학교들의 진학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왔지만 휴스턴이라는 도시는 사실 내가 미드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곳이었다. 안정적인 곳이었지만, 20대 초반 창의력이 들끓는 나에게는 사실 굉장히 지루한 도시였다. 하지만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을 "버렸다"는 기회비용과, 한국 친구들은 이미 졸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압박감에 이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뉴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미국에 왔는데 디자인하면 떠오르는 도시에서 공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뉴욕에 있는 학교를 준비하려면 또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대단한 도시'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어학당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 말고는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서포트를 받고 있던 나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며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나의 고민을 들으시더니 "네가 가고 싶으면 가"라고 아주 담백하게 기회를 던져 주셨다.
내가 만약 그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그리고 또래보다 4년의 뒤처짐이라는 자괴감이 더 커서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뉴욕에 대한 큰 미련과 함께 꽤나 지금과는 다른 행보와 가치관을 가졌을 것 같다.
엄마와의 통화 후, 나는 곧바로 학원 원장님께 뉴욕에 있는 학교를 가겠다며 선언했다.
역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우선 해보길 잘했다.
2. 무려 한국에서 3년간 <비건>으로 지내다.
스무 살, 아무도 없이 혼자서 미국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내가 먹은 모든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장을 볼 때도 식재료를 까다롭게 고르기도 했다. 엄청난 책과 기사를 뒤져가면서 음식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갖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고른 많은 제품들이 '마케팅'이라는 포장으로 나를 속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가공식품에 All Natural이라는 표기로 건강한 이미지를 주지만 사실은 '모든 것은 자연에서 온 게 맞지~'와 같은 말장난과 가까운 의미 없는 마케팅 수법 같은 것 말이다.(이때가 약 15년 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그러다 보니 축산물이 자라는 열악한 환경과 사육과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나는 유기농 제품이나 Grass-fed Beef(목초사육 소고기)와 같은 프리미엄 식재료를 선호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세히 파다 보니 정직한 회사가 몇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나에게 좋을게 하나 없다는 생각으로 동물성 식품을 점점 멀리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채식이라 채식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졌던 나는 채식에 대한 책과 기사도 열심히 팠다. 장점만 있을 것 같은 채식도 단점을 다룬 기사가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나는 20년 넘게 육식은 해왔지만 채식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가. 내 몸이 채식이 맞는지는 실험을 해봐야겠다 다짐하면서 채식주의의 식단을 하기 시작한다.
채식의 종류도 참 다양한데, 결국은 모든 동물성 제품(심지어 우유나 치즈까지도)을 배제한 비건(vegan) 식단을 선호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7년 전이었지만, 내가 비건이라고 하면 "비건이 뭐예요?"라고 물었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년 동안의 외로웠던 비건생활은 나에게 아주 활기차고 건강하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남았다. 채식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식단이라는 것을 알았고, 내 몸으로 몸소 체험해 봤다는 것에서 나는 채식생활을 응원하는 바이다.
이렇게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면, 채식에 대한 오해 혹은 비건이 가지고 있는 심오한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잡식으로 돌아왔지만, 내 몸은 언제든지 채식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게 나에게는 활력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몸소 깨달았으니 말이다.
사실 여기서는 비건만 언급했지만, 프루테리언, 생채식 식단 등등 다 실험해 봤다. 히힛.
풀떼기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우선 해보길 잘했다.
3. 파리에서 건네받은 <입사를 위한 사전과제>
나의 첫 직업인 브랜드 컨설턴트 또한 회사에서 직접 제안이 와서 입사하게 된 케이스다. 대학원 재학 중, 약 4개월 정도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듣고 있을 때였다. 브랜드 컨설팅 에이전시 대표님께서 MBA 대학원에 올려둔 나의 이력서를 보시고는 내 이메일로 '공간 브랜드 컨설턴트'라는 아주 생소하고도 흥미로운 제안을 주셨다. 학력을 보니 건축도 경영도 공부한 내가 적격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입사 지원 과정 중에 사전과제를 하나 주셨는데, 파리에 있는 유명한 부티크 호텔들이 판매하는 어메니티 제품들을 조사하는 과제였다. 그때 당시 파리에서 기차로 30분 넘게 떨어진 '세르지'라는 외곽 지역에서 학교를 바쁘게 다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보고서 하나 작성 못해본 나에게 이 과제는 꽤나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게다가 파리에서 유명한 호텔방들을 다 봐야 한다는데 그게 다 얼만가? 사전과제를 위한 비용 지급 여부도 물어봤는데, 그건 또 포함이 안된다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부딪혔다.
'바빠 죽겠구먼! 그것도 공짜로 내가 이걸 다 해야 한다고? 됐어 거절해!'
'그래도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 우선 해볼 건 다 해보고 거절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까?'
역시나 '우선 하고 보자' 태도가 이겨버린 나는 하루 날 잡고 과제를 위한 파리로 방문한다. 건축을 공부한 나는 워낙 다양한 공간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러 호텔을 이참에 돌아다니는 건 나에게도 굉장히 신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역시 숙박비였다. 유명한 부티크 호텔의 평균 1박 숙박비가 평일에도 2-30만 원이었는데, 한 군데 정도는 가볼 수는 있지만 다양한 호텔을 돌아다니며 '조사'는 못하지 않겠는가.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안 골똘히 머리를 굴린 나는 잠시 후 내 머리를 쓰담 대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 이 아이디어가 과연 먹힐 건지에 대해 심장이 두근댔다. 이 방법은 지금 떠올려도 매우 똑똑한 아이디어라고 자부하는데, 방법은 이러했다:
(호텔입장)
카운터 직원: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나: 아 네, 이 호텔에 관심이 있어서 왔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제 보스(상사)가 다음 주에 한국에서 오는데 예약 전에 혹시 방 투어 좀 할 수 있을까요? 워낙 예민한 분이라 인테리어나 어메니티 확인이 필요해서요.
카운터 직원: 오... 그러시군요! 물론이죠!
(투어 중)
매니저: 저희 호텔은 ~~~~~~ 이런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나: 너무 멋져요. 제 보스가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이미지로 보내야 확인이 빠를 것 같아서요.
매니저: 물론이죠!
이 방법으로 다섯 군데를 아주 편하게 투어를 받을 수 있었는데, 유명한 호텔들이라 그런지 전반적인 공간의 무드와 디자인, 취급하는 어메니티, 음악, 향, 서비스 등등 신나서 모든 요소를 사진과 함께 정리해서 사전과제를 마칠 수 있었다. 결론은 알다시피 합격!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만한 총체적 브랜드 경험을 주는 호텔들을 찾지 못했다.
성공적인 공간 브랜드의 아주 강렬한 첫 경험이었는데, 역시 우선 해보길 잘했지?
물론 우선 하고 본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선 해보는 이 모든 경험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아도 좋다'는 태도가 도움이 많이 된다. '좋았다, 나빴다'라는 결과론적인 판단보다는 그저 하고 있는 과정에 충실하고 있는 현재의 내가 얻고 있는 가치에 더 우선순위를 둬보면 어떨까. 사실 수익은 내가 재밌어하면 뒤따라오게 마련인 것을 알기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을 즐기는데 집중하는 것을 일 순위로 둔다.
내 직업을 N개라고 소개하기 시작한 때를 떠올려보니, 지금까지 얻은 타이틀의 9개 중 7개가 주위의 추천이나 권유로부터 얻게 된 직업이다. 내 인생에 뮤지컬 강사라던가 디지털 마케팅 강사를 할 거라곤 전혀 예상 못했다. 제안을 받았을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우선 해봤다. 해보니, 즐거웠다. 그럼 되었다. 뒤돌아 보니 '우선 하고 보자'는 나에게 직업 타이틀뿐만 아니라 귀한 인연들, 나에 대한 이해, 교훈, 지혜, 자신감, 다양한 기술 등 참 충만하게 많은 걸 주었다.
계획대로 흘러가기보다 '우연히 만난 길로 나아가는' 나의 경로.
그게 요즘 내 인생의 최대 재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