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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ie Bomi Son 손보미 Aug 09. 2020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다. 마흔을 앞두고 나는 삶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사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자연(自然)은 영어로 만물의 어머니 같아서 Mother Nature라고도 부른다.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에 화담채에 산책을 다녀왔다.


겨울의 스키장으로 유명한 이 지역의 여름이 이렇게 녹색의 푸르름이 가득한지 몰랐다. 이름 모를 각종 나무들과 꽃들, 새들과 다람쥐, 토끼, 물고기를 비롯해 다양한 벌레들이 가득한 이곳을 산책하며 회사일로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무한히 나에게 사랑을 주는 이 숲을 한참 거닐었다. 신선한 산소와 영양분이 가득한 대자연 품에서는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 번뇌와 다툼 따윈 필요 없다고 안도감을 선사해주었다.

 


나는 인간이 자연을 알고 싶어 해서, 자연의 무한한 자원을 잘 활용하고 싶어 해서 과학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를 잘 설명하기 위한 언어들이 수학이고, 물리학이고 그 이후에 더 다양한 과학들이 나누어지고 깊어진 것이 아닐까.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은 그간 인간의 과학적 성과와 생명,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많은 지식인들의 책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는 전 세계 오지를 여행하기로도 유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안에 우주의 정보가 다 들어가 있다고 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친구관계도, 애정도, 돈도, 권력도 자연스럽지 않고 갑자기 도약을 하거나 미끄러지면 위태롭게 된다. 놀라운 업적을 남기는 천재들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단계를 뛰어넘기에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남들보다 더 겸손하라는 것이 세상이 응당 기대하는 모습이다.




한국은 재테크 열풍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소유와 증식을 목적으로 한다. 돈을 버는 행위가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된다. 부자가 된 다음에도 계속 부를 증식하고 과도하게 자연스럽지 않은 부를 추구하게 될 경우 범죄자로 취급되거나 비탄받는 일도 생긴다. 쉽게 말하면 돈이 많거나, 유명하거나, 권력이 많으면 세상의 욕을 많이도 먹는다.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가치와 함께 가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자본주의는 무엇일까? 자연은 순환과 비움을 통해서 만물을 스스로 생산해낸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중세 문헌 표기의 `아름답다`의 `아름`은 알다, 안다, 아름 등의 동음이의어를 가진다. 「알음(知)」과 「답다」의 합성어, 혹은 「아(我)답다」.


그중에 하나는 ‘알다(知)’라는 뜻이다. 알다(知)라는 동사 어간에 `-음` 접미사가 붙은 알음(知)에 `-답다` 접미사가 붙었다는 견해가 있다. 아는(知)것이 아름다움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두 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의 길이’ 그리고 ‘두 팔을 둥글게 모아 만든 둘레 안에 들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로 ‘아름’을 설명한다. 한 아름, 두 아름 할 때의 바로 그 아름이다. 그렇게 볼 때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손으로 안고 있는 모습’을 ‘아름’답다로 표현하다. 자기의 능력과 분수를 알아 적당하게 사는 모습이 ‘아(我)답다’가 아름다운 것이다. 이에 따라 언어학자들은 아름답다를 `나답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어의 아름다움(Beauty)의 어원은 라틴어의 Bellus, ‘ 좋은 것’ ‘선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는 ‘beauty’는 ‘똑바르다’를 뜻하는 라틴어 ‘bene’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로마인의 미의 기준은 똑바르고 반듯한 것에 기원해서 훗 날 ‘bene’는 ‘반듯해서 보기 좋다’라는 뜻에서 ‘선하다’ ‘옳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또, ‘Beau’는 ‘Util(유용함)’을 뜻하는 말과도 어원이 같아, '어디에 쓰임이 있고 유용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내가 걸었던 아름다운 화담숲의 풍경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서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고 느꼈다. 시각적, 후각, 촉각, 청각적인 쾌감은 복합적인 예술 공연처럼 나에게 만족감을 선사해주었다. 이런 시간은 나 자신과 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주었다. 철학을 좋아하는 나는 니체를 떠올렸다.

 

니체는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구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종교에 반한다는 의견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그의 의견이 사실상 현대의 자본주의에 더 걸맞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주인의 도덕이란 부자 마인드와 어쩐지 닮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인간이 하나의 동물로서 자본주의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좋은 것은 무엇인가? ― 힘의 느낌, 힘에의 의지, 인간 안에서 힘 그 자체를 증대시키는 모든 것.
나쁜 것은 무엇인가? ― 약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
행복이란 무엇인가? ― 힘이 증대된다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제), 2004., 백승영
이미지 출처: 유튜브 5분 뚝딱 철학 - 니체 : 신은 죽었다. part 1


노예 도덕은 복수심, 원한 감정, 즉 반동적 집단 본능에서 성장한다. 가치를 스스로 설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것 전부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다. 소박하고, 배려하고, 동정이나 연민에 대한 권고 등은 노예 도덕의 표식이다. 반면에, 주인 도덕은 삶을 자기 극복을 통해 조형시키는 강한 의지, 많은 욕구들의 긴장적 대립들을 제어하는 능력, 긍정적 자기 긍정과 자기 가치의 느낌을 새로운 선의 내용으로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주인의 도덕에서 ‘선한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 의식 속에서, 자기 극복의 덕을 갖고 있는 자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가 한 말과 비슷한 맥락의 포인트이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5가지를 두려움, 냉소주의, 게으름, 나쁜 습관, 거만함라고 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다고 했다. 반면 부자 마인드는 배짱과, 담력, 용기, 투지, 끈기, 기지 혹은 지혜라고 부른다고 했다. 니체가 말한 주인의 도덕과 닮은 모습이다. 이래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라 자본주의가 현대의 종교가 되어간다고 했을까?



인간을 포함한 강한 동물이 살아남아 왔고, 진화해왔다. 인간의 과학 발달과 함께 우리의 삶은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앎이 증가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무지의 영역 또한 늘어난다. 또, 집합론의 창시자인 유명한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 (Georg Cantor)는 “한 번 잘못된 결론이 널리 인정되고 오래 받아들여지게 되면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런 현상을 ‘무지의 보존 법칙’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에 매여 도무지 새로운 시각을 갖지 못할 때 흔히 그것을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이 고정관념에 벗어나면 우리는 비난하기도 하고, 새롭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유독 이념의 지배가 강한 것 같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그 이유가 지성적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외부에 있는 기준을 수용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수입된 기준을 적용하거나 수행하면서 살아서라고 한다. 선진국은 눈을 계속 바꾸고 이념을 생산해낸다고 말한다.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자기로 존재하고 자기로 사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작은 스타트업의 경영진이다.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는다. 아직 제대로 성공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때,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몰랐다. 경영진이라 하지만, 나도 우주만물이 담긴 세포 덩어리 일뿐, 한 일개의 인간이라는 동물일 뿐!

 

이래야 한다는 여러 가지 조건으로 사람들을 비난하고 혹은 비난받고, 어떤 과도한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다. 경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행위가 건강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사람들의 탐욕과 욕망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도 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을 넘어서 창조적으로 일을 꾸려가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한다. 아름다운 자본주의에서는 현재의 현실적인 효용성과 미래 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로서의 인간의 행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것, 남들이 생각한 것, 각자의 가치로, 개인의 도덕으로 살아가는 것에 옳다 그르다에 집중하기 보다는, 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삶이다.

 

자연스러운 삶에도 잊지 않고 기대하는 것이 있다. 니체는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라고 했으니. 행운도 자연의 한 요소가 아닐까. 언젠가는 자연이 나에게 행운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주리라 믿는다. 힘든 일이 있어서도 자연의 이치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끈기와 열정으로 나의 자연스러운 삶을 존중해보기로 했다.


나답게, 주체적으로,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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