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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Sep 16. 2023

22. 미디어 속 히어로, 멀고도 먼 존재

히어로물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나에게도 어떤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는 단계까지 온 뒤였다.

 

한창 넷플릭스 고인물이었던 나는 차려진 반찬은 많으나 입맛에 맞는게 없어 이리 깔짝 저리 깔짝 하는 지경에 다다랐는데, 주로 수사물이나 미스테리, sf물을 보다 '데어데블' 이라는 마블 히어로물의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고, 일단 1화만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정신차리고 시간을 봤을 땐 이미 다음날 아침 6시였다. '이렇게 재미있는걸 이제 봤다니!' 하는 뒤늦은 후회와 시리즈로 나온 탓에 시즌 2와 시즌3이 남은 것에 설레하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며칠만에 정주행을 했더랬다. 세 개의 시즌으로 끝난게 아쉬울 만큼 나는 작품에 푹 빠져들었다.


'데어데블'인 주인공 맷 머독은 어릴때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었으나 시력 외의 모든 감각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앞서 앞이 보이지 않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처럼 재빠르다. 역시나 주인공에겐 늘 그렇듯 정을 주지 않지만 사실은 맘으로 제자를 아끼는 까칠한 스승이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어릴 적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렇게 성인이 된 맷 머독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절친한 친구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며 일에 집중 하지만 밤에는 복면을 쓰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처음엔 가벼운 범죄자들을 혼내주는 정도였는데 대기업과 엮이면서 변호사일에 집중 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고 동시에 두 가지 직업에 대한 그의 고뇌도 시즌 내내 계속 된다. 머독은 평범한 일상과 히어로의 삶은 공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한 쪽을 선택하기도 버리기도 쉽지 않다.


한 시즌에서 악당을 법원으로 보내는 마무리로 끝나지만 이어지는 시즌에서 다시 악당을 쫓는다. 변호사가 되어 법으로 악당을 할 것인지 데어데블로 처단할 것인지도 그의 고뇌에 포함된다. 맷 머독의 어딘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외모와 부드러운 보이스를 듣는 것은 계속되어야 하건만 시즌3 이후로 제작예정이 없다니 제작진에게 미끼를 물 살을 날려야 하는 것인가? 아쉽기만 할 따름이다.


데어데블 다음으로 빠져서 본 작품은 활을 쏘는 히어로로 제목은 '애로우'가 되겠다. 이 작품은 무려 시즌8까지 있는 것에 놀라 이 긴 시리즈를 언제 다 보나 했지만 한 번 꽃히면 끝을 봐야 하기에 최근 전 시즌 정주행을 완료했다.


애로우는 철없던 재벌 2세 올리버 퀸이 5년 동안 섬에서 갖은 생고생을 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스타시티의 자경단으로 활동하게 된 배경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매력적인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엔 홀로 싸움을 시작했지만 시즌이 계속 될 수록 그의 주변엔 그를 따르는 동료들이 많아지고 동료들과의 케미 또한 재미를 더해준다. 그에 반해 올리버퀸의 연애사는 초반 시즌엔 이해가 가지 않는 전개였기지만 덕후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애로우는 히어로물이면서 판타지적인 설정도 들어가 있어 '저게 말이 돼? ' 하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유치한 설정도 어차피 연기는 배우 몫, 시청자는 역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다음으로 정주행 한 작품은 '슈퍼걸'로, 제목처럼 여자가 히어로인 설정이 흥미로웠다.

주인공 카라는 외계행성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인데 지구의 노란 태양으로 인해 카라는 원래 있던 행성에서는 쓸 수 없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카라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다 자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슈퍼걸이 된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카라는 안경을 끼고 있는데, 슈퍼걸이 되면 안경을 벗는다. 투시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안경만 벗었을 뿐인데 가족과 친구들이 못 알아보는 상황도 역시 이해 불가한 설정이지만 그럴수도있지 하고 마음을 열면 된다. 다만 2015년에 첫 방영을 헀기에 주인공은 평범한 생활을 할 때는 모범생 스타일에 머리를 묶고 있다가, 슈퍼걸이 되면 갑자기 긴머리를 풀어헤치고 짧은 스커트에 검은 스타킹 롱부츠를 슈트로 입고 활동하는 모습이 지금 시각으로는 아쉬워보이는 점은 어쩔 수 없으나 시즌 후반부에 중단발 헤어와 팬츠 슈트를 입고 나오는 모습에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카라 역시 히어로이기에 인생사가 순탄하지 않고, 우여곡절과 사연도 많다. 그러나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언니가 있고, 동료들이 있기에 카라는 혼자 보다 동료들과 함께 한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데어데블이나 애로우보단 분위기가 덜 무겁고 유머코드도 은근히 많다.


이렇게 히어로물을 여러편 보다 보니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연있는 과거, 개인 사생활 보다 중요시 하는 히어로 활동, 그에 따라 서운해 하는 가족들 또는 가족같은 친구들, 그럼에도 주인공을 지지해주는 끈끈한 동료들의 의리, 후회와 다짐과 결심을 반복하다 다시 상처받고 잠수타는 주인공, 잠수탄 주인공을 각성시켜주는 과거의 잔상, 법의 심판으로 감옥행이었으나 탈출이 제일 쉬웠어요로 다시 등장 하는 앙코르 악당, 연애사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애매한 결말, 주인공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히어로. 늘 고독한 히어로.


이런 일정한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히어로들 사이에 화면 밖의 나는 그들 작품에 등장하는 깜짝 놀라 대피하는 시민 정도의 역할 일 것을 생각하니 조금 현타가 왔다.

히어로는 타고난 선천적 능력이나 후천적으로 얻은 특별한 능력이 필수이다.

개인의 복수심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뇌하고 후회하고 반성해야 하기 때문에 절절한 사연도 한 스푼 추가되면 이야기의 절반은 만들어 진 것이다.


한 번 현타가 오니 나는 점점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스크린에 나오는 그들은 늘 사회악에 맞서 싸운다며 대기업이나 범죄직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시공간을 넘나 든다.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스토리가 다양하고 볼거리도 많아지지만 그럴 수록 주인공의 원맨쇼도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는 주인공의 멋진 액션신도 좋지만 좀 더 인간관계를 다지고 동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속마음도 털어 놓는 인간적인 히어로의 모습도 보고싶다.

나와 같은 사람냄새를 더 맡고 싶다.


그러면 히어로가 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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