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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Aug 21. 2016

어서 와, 임신은 처음이지?

이야기의 시작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곧 식은땀도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증상은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고,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영화 속에서 빈혈이 있는 가녀린 여주인공이 우아하게 쓰러지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기절'이란 걸, 매우 추한 모습으로 곧 하게 될 것이란 강한 확신이 몰려왔다.  


체면이고 부끄러움이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난 이 날 우연히 내가 서있던 자리 앞에 앉아있었던 운 나쁜 한 중년 남성에게 외치듯 말했다. "아저씨 자리에서 좀 일어나세요.  쓰러질 것 같아요." 


그 남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날 바라보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가 무너지듯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하자 옆 자리의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시다 알사탕 하나를 꺼내 입 안에 넣어주셨다. 


할머니의 따뜻한 관심에도 이날 난 결국 환승역에서 회사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타지 못했다. 환승역 의자에 앉아 남편과 회사에 전화를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심하게 술병이 난 것도 아니고,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출근길에 기절할 뻔해서 회사를 못 가다니! 건장한 골격을 스스로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로 생각해온 나로서 난생처음 겪는 일이고, 상상의 범주에도 있지 않았던 일이었다. 


임신에 따른 변화는 이렇게 마음이 미처 준비되기 전에 몸에서부터 시작됐다.   


놀란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임산부들은 원래 잘 기절하고, 심하면 옷을 갈아입다가도 쓰러진다면서 출혈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좀 쉬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기절할 뻔했다고 말하니, 한 회사 선배는 실제로 지하철로 출근하다가 쓰러져서 응급차로 실려갔던 경험을 얘기해줬다. 내가 몰랐을 뿐, 주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던 것이다. 

 

그 며칠 뒤에는 마감을 코 앞에 두고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뒤 충격을 받았다.  '임산부', ' 졸음'으로 검색했더니, 이번에도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처참한 경험담들이 쏟아졌다. 너무 잠이 오는데 쉴 곳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또는 탈의실에서 잠시나마 쪼그려 쪽잠을 청한다는 임산부들이 전국에 가득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다가가고 싶지 않았던, 고통스러운 세계 하나가 내 앞에서 문을 열고 있었다.  


악마가 " 어서 와, 임신 지옥은 처음이지?"라며 사악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많은 부부들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우연히 찾아온 아기 소식은 기쁨보다는 수많은 걱정을 먼저 안겨주었다. 가깝게는 '아기를 낳으면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서부터 멀게는 '이 불평등하고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도 물려줄 수 없는데 아기를 낳는 게 무책임한 것 아닌가'까지, 수많은 근심이 몰려왔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두 친구가 생각났다. 한 명은 영국에서 최근 둘째를 낳았고, 다른 한 명은 덴마크에서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이다.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한국과 다른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았다. 


영국에 있는 친구는 출산 때까지 아기 성별을 몰랐다며, 침대에서 앉은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고 말했다. 산모 입장에서 앉아서 아기를 낳는 게 중력도 이용하고 더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황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당연하면서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덴마크에 있는 친구는 임신과 동시에 아이를 낳을 병원부터 출산을 도와줄 산파, 각종 진료 스케줄까지 정해져 나온다고 했다. 응? 북유럽에 산파? 게다가 병원도 정해준다고?


궁금한 것이 많아졌고, 친구들과의 이런 수다들을 함께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출산, 양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를 지원하는지는, 그 사회의 가치 체계와 작동 원리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골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엄마'란 이름으로 하게 되는 고민들을 이 친구들도 똑같이 하고 있는지, 여러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했고, 각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해결 방법들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엄마, 영국 엄마, 덴마크 엄마가 함께 하나의 소재를 정하고, 각자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보자 한다. 소재는 제도적 지원 같은 무거운 얘기에서부터 입덧, 임신하고 먹고픈 음식, 산후조리, 아니면 남편 흉 등 우리가 수다 떨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분량도 마감도 우리 마음대로다. 이건 어디까지나 수다니까! 


먼저 엄마들을 소개한다!  

 

한국 맘   12년 차 기자. 10월 말 출산을 앞두고 있는 37살의 노산+초산 예비맘. 병원에 갈 때마다 체중 때문에 혼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배 크기를 보면 이제 일을 쉬어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꿋꿋하게 많이 먹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음. 


영국 맘  14년 차 은행원. 사내커플로 만난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런던 생활 6년째. 33개월 된 에너지 넘치는 딸과 2개월 된 아들의 엄마임. 두 아이가 한꺼번에 울 때는 출근이 하고 싶어 지는 '빡센' 출산 휴가 중.


덴마크 맘 12년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대학원으로 돌아간 학생 엄마. 현지에서 만난 덴마크인 남편과 결혼해 내년 1월 말 출산을 앞두고 있음. 덴마크에서는 하지 말라는 게 별로 없어서 한국에서는 임신 중 생각도 못할 운동 및 활동들을 자유로이 하고 있는 것에 소소히 기뻐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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