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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 i DK Sep 01. 2016

희미한 두 줄을 발견하고

1. 임신 첫 확인 - 덴마크

아직 생리 예정일이 4일여 남았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생리 전 부푸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부푼 것 같은 가슴, 마치 생리 시작하기 직전과 같이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던 아침. 그냥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달리 더웠던 5월 말경의 어느 날, 친구와 헤어져 들어갔던 화장실에서 말로만 듣던 착상혈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제 몸의 변화에 예민한 탓에 이 세 가지 일이 겹치자마자 불현듯 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요.


집으로 가는 길, 임신 진단 키트를 두 세트 샀습니다. 하나에 두 개가 들었으니 총 네 개를 산 것이지요. 아직 생리 예정일이 나흘이나 남았으니 혹시나 한 줄로 나올 것에 대비해 여러 개를 사 들었습니다. 테스트를 한 순간은 한 줄인 것 같았는데, 제 눈에만 보이는 것 같은 또 다른 흐린 한 줄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던 또 하나의 줄이요. 연이어 세 개를 해보고 나서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임신이구나.


여러 번 테스트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이 소식을 남편에게 알릴까 하는 것이었어요. 별로 창의적이지 않은 저는 그냥 테스터를 들이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날 남편이 불쑥 꽃을 한 다발 사 와서 제가 깜짝 놀랐지요. 사실 그냥 퇴근하는 길에 별생각 없이 사 왔다고 했는데, 전 뭔가 남편이 저 모르는 태몽이라도 꾼 건가 하는 생각마저 했거든요. 테스터를 본 남편은 이게 무슨 뜻이냐고 어리둥절하더니, 설마 임신한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 달부터 임신을 계획해보자고 했는데, 계획하자마자 아이가 찾아와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제 나이도 만으로 36살이고, 남편도 43살이니 적지 않은 나이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안정기가 될 때까지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고도 하던데, 저희는 그냥 다 알리기로 했어요. 우선은 직계가족에게만 알릴까 하다가, 직계가족에게 알리는 것에 더불어 한국어로 제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어요. 제 페이스북에 남편 회사 동료들 중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 회사에 알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어서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가장 먼저 임신, 출산에 관련된 책부터 샀어요. (사실 아기 이름 책도 함께 샀답니다.) 영어와 덴마크어로 된 책을 각각 하나씩 말이지요. 영어로 된 책이 더 편하더라도 이 곳의 임신, 출산 관련된 의료 및 사회제도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려면 덴마크어 책자도 필수적이라는 남편의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또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필요해 그 당시 둘째를 임신한 제 사촌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애 셋을 낳아 잘 키우고 있는 시누이의 경험도 들었어요.


임신, 출산 서적보다는 이름 책에 더 끌리더군요. 이 책부터 골랐어요.


우선 임신 6~8주 차에 주치의를 만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의사 면담 예약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고 의사를 만나러 6주 차에 갔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더군요. 주치의 병원에는 초음파 기계가 없다면서요. 한국에서는 5주 차면 심장 초음파를 듣는다고 익히 듣고 있었기에 그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혈액검사와 함께 거의 한 시간에 달하는 의사와의 면담만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앞으로 어떤 식의 진료가 예정되어 있는지와 함께 임신 과정 중 겪게 될 신체적 변화, 먹어야 할 비타민, 철분제제 등에 대한 설명, 기타 저와 제 남편의 가족 병력에 대한 문진 등에 대한 것이었어요. 남편은 회사도 출근해야 하고 하니 첫 면담엔 시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혼자 가지 않은 것은 참 잘했던 결정이었어요. 양쪽 다 특별한 유전적 질환이 없었지만, 저 혼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질문이라 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랬고, 뭘 물어봐야 하는 것인지 등도 잘 모르는 상태로 갔는데, 시어머니가 대신 물어봐주신 것들도 있었고요.


한국과 다른 점은 임신 및 출산 의료를 담당하는 주체가 크게 셋으로 나뉜다는 것이었어요. 제 주치의와 제 출산을 담당할 종합병원, 그리고 그 종합병원에 소속된 산파가 정해지고 각각의 진료 스케줄이 사전에 주차별로 정해졌습니다. 제 주치의와는 6~8주 차 사이의 첫 상담을 시작으로 25주 차, 32주 차에 면담이 있게 되고, 제가 출산할 종합병원 (Herlev hospital, 헤얼레우 병원)이 바로 배정되어 해당 병원에서 12~13주 차의 1차 기형아 검사, 20~21주 차의 2차 기형아 검사, 출산에 임박해 3차 초음파 (제가 35세 이상의 고령산모라 전 세 번 하게 되는 것 같더군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기형아 검사 시점에 비슷하게 산파와 1차 면담이 있고, 그 이후에 몇 차례 산파를 만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출산은 산파가 담당하고, 중간에 응급의료 상황이 발생하거나 역아 등 출산 전에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의사가 개입한다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 개인정보와 함께 문진 내용이 기록된 종이가 든 노란 봉투를 주며 어떤 의사를 만나든 임신 기간 중 모든 의료 기록을 여기에 모으라고 한 게 재미있었어요. 첨단 IT 시대에 이런 게 웬 말이냐며 의사도 의아해했습니다. 


이게 바로 문제의 노란봉투입니다.


의사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 중에 하나는 운동이었어요. 그래서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국에서 부모님이 자전거 타던 거 중단해야 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야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자전거는 가장 추천되는 운동 중의 하나라며 막달에 가까워져서 무게중심이 변하는 탓에 자전거에 올라타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면 그 타이밍부터는 타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매일 원래 타던 데로 열심히 타고 다니라고 하더군요. 승마, 테니스를 포함해 몇 가지 운동을 예시로 들며, 이런 류의 운동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열심히 운동을 해야 나중에 출산을 잘한다고 운동을 권장했습니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 확률이 높아서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더니,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상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유산이 되는 아기는 유전적인 결함 등으로 임신을 스스로 유지할 수 없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엄마의 잘못된 행동으로 유산이 되는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과 운동은 하던 데로 계속하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더군요. 임신 소식을 접한 제 한국 지인들 모두가 몸조심하라고, 푹 안정을 취하라고 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만을 듣고 왔습니다. 


하나의 아쉬운 점은 초음파였습니다. 테스터의 두줄을 발견하고도 화학적 유산을 경험한 사람들이나 심장 초음파에서 태아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살짝 저도 불안한 상태였는데, 이런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불편하더군요. 제 주치의는 정 궁금하면 사설 클리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남편과 상의를 한 끝에 굳이 15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들여 6주 정도 먼저 초음파를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나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는 시스템인지라 한국처럼 걱정될 때 병원을 바로 찾아가 자기 돈을 내고 초음파를 보는 일이 드물더군요. 


전 지금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으로 돌아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탓에 언제 알리나 이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도 없었고요, 그냥 초반에 입덧으로 그룹 프로젝트에 영향이 있을 거 같아 같은 프로그램 학생들에게 다 알렸어요. 얼마나 자기 일처럼 기뻐들 해주는지 오히려 저보다 더 기뻐해 주면서 끌어안아주는 친구들 덕에 당황할 지경이었답니다. 5주 차에 이야기를 한 것이라 어떤 친구들은 아직은 안정기가 아니라 신경 쓰이겠다면서 모든 게 잘 되기를 빌어주며,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없이 임신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해주며 저의 작은 불안감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또 이 아기는 저희 환경자원경제학 (ENRE) 프로그램의 아이라며 이 아이 이름은 ENRE(엔러)로 지어야 한다는 억지마저 부리기도 했습니다. 


타국에서 경험하는 첫 임신이라, 안 그래도 초보인 엄마에게 더 생소하게 느껴집니다만, 엄마에게 한국보다 더 많은 자유를 주는 이 곳의 임신이 에너지가 넘치는 저에겐 더 알맞게 느껴졌습니다. 정해진 스케줄 대로, 의사나 산파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인 출산이 다가오겠지요. 앞으로의 다가 올 많은 일들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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