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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May 25. 2020

김 앵커는 진상이었다

- 편집자 한라봉의 관점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 김 앵커 가 쓴 글을 보고 깜놀. 아니, 글만 보면 나란 새럼, 저자 의견 따위 간단 제압하는 냉혈 편집자인 줄? 진실은 <라쇼몽>에서처럼 화자에 따라 달라진다.  


솔직히 김 앵커는 진상이었다. 새벽 6시고 밤 11시고 카톡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누가 기자 본업 아니랄까 봐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 책을 쓰는 건지 나를 취재하는 건지 헷갈렸다. 와중에 나를 또 어찌나 놀려대는지... 필자 대접해드린답시고, <박완서의 말> 경쾌한 에디션을 부러 챙겨 보냈더니 "이거 박근혜의 말이네?! 광화문 태극기 부대 스페셜 에디션이야?" 하고, 북클럽 회원들한테 홍보 레터 보냈다는 말에는 "북클럽이 200만 명도 아니고 200명?! 귀엽다" 한다. 이 모든 뼈 때리는 말을 웃으며, 맑은 얼굴로 시전 하신다. 친구야. 나 어금니 깨문 거 안 보이니?


앵커,라 하면 대체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커리어우먼이겠지만, 글쎄.. 내가 본 김 앵커는 허당에 주당? 항상 가방에 뭐가 묻어 있고, 한미동맹을 자꾸 한미'동생'이라 발음하고 애주가답게 대체로 주로 앉아 있는 곳은 술자리. 모 팟캐스트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는 소식에 좋아라 하기에 왜 때문인가 했더니 "김혼비 씨 나오는 거 들었어. 그분은 소주 마시면서 하던데 그럼 난 쏘맥 말면서 방송해도 돼?" 이런다. 팟캐 녹화 자리도 술판으로 만들겠다는 사심. 친구야, 우리 마흔 줄이다, 정신 좀 차리자.


한데 이 허당에 주당이 또 의외로 치밀하다. 작전을 짤 때만은 디테일이 쩐다. 앵커 미션을 받고 나서 남자 앵커가 '관례상' 먼저 뉴스를 전한다는 말에 분기탱천. 조직 내 여론을 조사하고 다른 선례를 찾고 지원군을 확보한 뒤에 결국 자기가 먼저 진행하는 것으로 순서를 바꿔냈다. 인권위도 미디어 성차별의 한 사례로 나이 든 남자 앵커와 어린 여자 앵커 구성, 그리고 남자 앵커가 오프닝을 하는 것을 지적했다 하니 의미 있는 변화겠지.


마감을 하는 동안 미친년 널뛰듯 콩을 볶고 여차저차 책이 나왔다. 책 만드는 동안 같이 사는 K보다 더 많이 수다를 떤 것 같은데, 이 과정이 피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그럼에도 기꺼이 달달 볶여준 것은 돌아보니 ‘그날’의 한 장면 때문인 것 같다.


저자 교정지를 전해주던 날.
‘김 앵커, 어디서 만날까?’ 했더니 집 앞 놀이터로 오란다. 어젯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퇴근했는데, 잠깐 자고 일어나서 아들내미 보느라 놀이터에 있다나. 편집자 생활에 놀이터로 교정지 배달 간 건 처음인데, 전날 밤샌 티를 폴폴 내며 수세미 머리에 쌩얼로 벤치에 앉아 있더라. 그 와중에 다섯 살 아들내미는 애정표현이라며(?) 엄마 배를 퍽치기 해대고, 김 앵커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헤어질 즈음 물었다.
“그래서 마감이 언제라고?”
그리고 거짓말처럼 마감일에 교정지 퀵이 왔다. 그러니까 기자에 앵커에 엄마인 ‘쓰리잡’ 그녀는 하루하루 뼈를 갈아 살면서도 글을 쓰긴 썼던 거다. 제 입으로 계속 ‘착한 저자’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성실한 저자인 것만은 확실함. 그리고 나는 성실한 저자와 함께 뼈를 갈 준비가 된 한라‘봉’이다;;


그나저나 두 번째 책도 나랑 하자고 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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