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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Apr 24. 2020

코로나 블루스

이곳 싱가포르는 4월 7일부터 Circuit Breaker라는 명칭으로 한 달간의 봉쇄조치가 시행되었다. Social Gathering이 금지되었고, 병원, 은행, 마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식당은 배달, 또는 구매 후 가져가는 서비스만 가능해졌다. 모든 운동시설 역시 문을 닫았고, 집 근처 산책 정도만 허용된다. 그리고 4월 20일 매일 천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봉쇄조치가 6월 초까지 한 달 추가 연장되었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조금 늦어졌다. 이제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조깅을 한다. 이전보다 간식을 더 많이 먹고 아무래도 움직임은 줄었다. 전보다 근육량이 줄고 살은 조금 찐 느낌이다. 8시 40분이 되면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짧은 여유 후 9시에 책상에 앉아 PC를 부팅한다.


초반에는 사무실보다 몰입도가 높아 업무량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욕이 떨어지면서 요즘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와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한창 뜨거운 여름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지 한낮에 산책이나 조깅을 한다. 하지만 나는 산책할까 마음먹었다가도 마스크를 쓰고 뜨거운 햇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포기한다.


늘어난 여유시간에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것이 싫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굳은 머리로는 도통 단어가 외워지지 않는다. 몇 번을 되뇌다가 잘 안되면 결국 늘 그렇듯이 맥주를 꺼내 들이킨다. 전보다 과음은 줄었지만 마시는 횟수는 늘어났다.


어찌 보면 이전과 크게 다른 삶은 아니다. 같은 시간에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독서나 유튜브 보기 같은 비슷한 일을 하며 여유시간을 보낸다. 달라진 건 덥수룩한 수염과 정리되지 않은 머리, 불만어린 아이들의 칭얼거림 정도다. 아니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고 뭔가를 먹고 가끔씩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 점도 다르다.


어딘가로 여행 계획을 세울 수도, 마음 편하게 외식을 할 수도 없다. 가까운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일 수도 없고, 쇼핑은 물론 가족들과 공원에서 운동을 즐길 수도 없다. 거의 회사와 집을 벗어나지 않던 내 동선에서 막상 달라진 점은 많지 않지만 사소한 일상의 제한이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한식당에서 고기 구우며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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