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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Apr 27. 2020

재택근무

스카이프로 미팅을 하던 중 내쪽에서 큰 노이즈가 들린다고 동료들이 얘기한다. 창 밖을 보니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 언제나처럼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별생각 없이 회의하는 와중에 동료들의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서는 빗소리가 꽤 큰 소리로 들린 모양이다.


코로나 판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하면서 모든 회의는 스카이프를 통해서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한 소리들이 동료들의 목소리와 함께 섞여온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조용하라고 다그치는 목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강아지가 짖는 소리... 무척 친근한, 또는 친숙한 소음들은 작은 노트북을 통해 동료들의 진지한 목소리와 함께 어울리지 않게 뒤섞인다


정부의 봉쇄조치 후 텅 빈 길거리는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가 죽었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놀이터, 수영장, 공원 모두 조용하다. 마스크를 쓰고 지나는 사람들은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능한 떨어지려 애를 쓴다. 인적이 드문 길거리를 지나 마트에 들어가면 정부지침에 따라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온 어른들로 가득하다.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쓰고 카트에 물건을 담는 어른들의 손길은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필사적으로 보인다.


놀이터, 수영장, 공원, 그리고 길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목소리는 뜻하지 않게 노트북의 작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한없이 답답해할 아이들의 억눌린 에너지가 집안에 넘쳐흐르고 그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사우디에서, 싱가포르에서 동료들의 목소리와,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엑셀 파일과 함께 성능 나쁜 스피커를 통해 집안 구석에 자리 잡은 내 귀속까지 들려온다.  


동료들에게도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시간에 몰래 유튜브를 보다가, 게임을 하다가, 인터넷을 보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다. 공부하느라 그랬다는 아이들의 믿기 어려운 변명이, 그런 변명에 더욱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가 어쩌면 PC를 통해 동료들에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엄마의 잔소리에 삐친 아이가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억울하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의 대거리가 들렸을 수도... 아니면...


그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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