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체구조 상 달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적어도 장거리 달리기에 한해서는 그렇다. 털이 거의 없는 피부와 약 4백만 개에 달하는 땀샘을 통해 배출되는 땀이 몸의 열을 효과적으로 식혀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족보행을 하는 탓에 사족보행 동물들보다 추력이 약해 단거리 속도는 느리다. 하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낮아 지구력만큼은 지구 상 어느 동물들보다 뛰어나다.
실제로 원시시대 인간의 대표적 사냥 전술은 끊임없는 추격전이었다. 짧게는 수 킬로미터에서 길게는 수십 킬로미터까지 사냥감을 쫓아 지칠 대로 지친 동물을 안전하게 죽이는 전술이다. 그래서 사냥 거리가 길어진 인간은 본능적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억하기 위해 주위 사물과 지형을 끊임없이 살피며 달렸다.
물론 인간의 진화적 특성이 나에게 온전히 발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수 킬로미터는커녕 수백 미터만 달려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BPM이 200 가까이 오르는 것이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도 땀으로 운동복을 푹 적시며 꾸역꾸역 5 km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내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결과일 수 있다.
이른 아침 부족한 호흡을 감당하며 30여분을 온전히 달리는 것은 몹시 고역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걸 주 3~4회 반복하는 것은 결연히 마음가짐을 다잡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두툼해진 뱃살과 목표한 거리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짧은 희열은 적어도 시작을 반복하게 하는 힘을 준다.
매일의 시작을 무엇보다 위협하는 건 욕심이다. 어제보다 빠르게 완주하고 싶은 욕심, 어제보다 좀 더 먼 거리를 뛰고 싶은 욕심이 그날의 달리기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고통스러운 달리기는 내일의 시작을 두렵게 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는 건 부지런히 달리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다. 부족한 호흡과 체력을 감당하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은 의욕과 활기를 준다.
호흡이 부족해도 체력이 달려도 주위를 살피는 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사냥을 위해 긴 거리를 이동한 후 되돌아오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 사물과 지형을 관찰해야 했던 선조의 시공을 초월한 가르침이다. 결코 짧은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여성들을 일부러 찾아보려 함이 아니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