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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May 09. 2020

네트워크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을 확인한다. 꼭 확인해야 하는 정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버릇처럼 인터넷 서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깅을 나설 때는 스마트 워치를 챙긴다. 칼로리 소모, BPM, 거리, 시간 등을 체크해주는 고마운 기계다. 아침 샤워 후 바로 PC를 부팅한다. 두 개의 업무용 PC를 번갈아가며 확인한다. 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만들고 스카이프로 미팅을 한다.


주식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TV를 켠다. 가족들과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본다.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확인하고, 킨들로 책을 읽는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거의 종일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두 개의 PC, 두 개의 핸드폰, 스마트 워치, 킨들까지 전부 WiFi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다. 이제는 네트워크가 일상이며, 휴식이 되고,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네트워크에서 나는 콘텐츠 소비자이며 제공자다. 업무시간에 주간보고, 월간보고 등 보고서를 쓰고, 실적 관련 이슈 분석 및 대응방안을 작성, 공유한다. 업무시간 후에는 소비자로서 뉴스를 보고, 글을 읽고 영상을 시청한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나는 구조주의적이다. 나의 본질은 소비자와 공급자로 명확히 규정된다.


콘텐츠 공급자로서 나는 조직이 부여해준 직급과 롤을 정체성 삼아 충실히 정보 제작자와 평가자로서의 본질을 실현해 낸다. 소비자일 때는 익명성을 가진 대중의 일원으로 정보에 대한 클릭을 통해 모범적인 시장의 구성원 역할을 한다.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나는 실존적 주체가 된다. 그때서야 나는 전 지구적으로 구현된 구조와 연결에서 빠져나와 선택과 책임에 기반한 온전한 ‘나’가 된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도 나는 네트워크 속에 규정된 역할을 가진 본질적 존재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자각적 실체로서의 주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을 마주한다.



점심은 불닭볶음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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