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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Jan 08. 2023

‘나’의 실존에 대하여…

세상은 절묘한 균형으로 가득하다. 식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흡수한 후 에너지 대사를 통해 탄수화물과 산소를 배출한다. 동물은 탄수화물과 산소를 흡수하여 화학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고 이산화탄소와 물을 내보낸다. 지구는 태양과 딱 적당한 골디락스 존에 위치하고 있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 목성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절묘한 위치에서 수많은 소행성과 운석들을 끌고 다니며 지구를 보호해 준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 우주를 구성하는 힘들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힘은 절묘하게 딱 적당한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어 별과 행성과 다양한 원소들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만약 ‘중력’이 조금 더 강했다면 별들의 수명은 짧아졌을 것이고 그만큼 생명 탄생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만약 ‘강력’이 조금 약했다면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는 전자기력을 극복하지 못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절묘하게 서로 균형을 이룬 힘이야말로 현재의 안정적인 우주와 다양한 원소들을 만들고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마치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이러한 절묘한 균형은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 균형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인류원리라고 부른다. 인류원리를 나 개인의 실존으로 적용해봐도 마찬가지다. 만약 부모님이 서로 만나지 못했다면 나라는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만났더라도 조금만 다른 시간에 관계를 가졌다면 나와 다른 형태의 유전자 조합을 가진, 의식이 다른 존재가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 ‘나’라는 현시점 우주에서 유일한 원자조합은 수많은 우연과 사건이 겹쳐 극악한 확률을 뚫고 탄생한 것이다.


스스로의 실존을 인지하고 그 의미를 숙고할 때 가질 수 있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까지 필요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연과 사건, 절묘한 균형을 의지를 가진 초월적 존재의 관여로 보는 관점, 반면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서 우연히 이 세상에 실존하게 된, 그저 번식을 위한 유전자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만들어진 원자의 구성물로 보는 관점이다.


나는 스스로를 후자로 생각한다. 그것은 후자가 더 합리적일 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그 긴 시간과 수많은 사건, 말 그대로 우주적인 힘을 누군가가 오랜 기간 조율해왔을 것이라는 오만을,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졌다기에 나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다. 만약 그 ‘누군가’가 정말로 있다면 아마 심각하게 항의했을 것이다.


‘평점 2.0 (5점 만점)‘

졸면서 만들었나요? 겉모양도 별로고 성격도 모가 났네요.

험한 세상 만들고 거기에 대충 던져놨으면 뭐 잘하는 거 하나는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동네 짜장면집도 맛없을 것 같으면 라면수프라도 슬쩍 뿌려서 갖다 줍니다. 거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닙니까?



‘나’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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