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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Jan 29. 2023

애플, 애플, 애플

눈을 뜨고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5시 반이다.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잠을 깼더니 피곤하다. 무알콜 맥주라고 해도 마시고 자면 자다가 화장실에 가야 한다. 알코올이 없으면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다. 무알콜이라 취하지도 않고, 맛도 별로 없고, 자다가 안 깨는 것도 아니다. 뭐 하러 마시나 싶은데 한편으로는 이거라도 없으면 어떻게 사나 싶다.


더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다. 누워서 아이폰을 들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유튜브 숏츠를 보며 킥킥댔다. 고양이가 침대 위로 뛰어오른다. 우리 집 고양이는 눈만 뜨면 치근덕거린다. 일어나면 간식부터 챙겨주는 걸 알고 그러는 거다. 하지만 간식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본체만체한다. 아쉬울 때만 애교를 부리는 게 얄미워 머리통을 때려주고 싶은데 전에 그랬다가 손가락을 콱 물린 기억이 나서 그만두고 만다.  


다시 화장실에 갔다가 소파에 앉아 폰을 들었다.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난데없는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둘째 녀석의 아이폰 알람이다. 일찍 일어나겠다고 알람설정 해놓고는 막상 폰은 거실에 두고 잔다. 그래서 알람을 끄는 건 항상 나다. 그런데도 왜 나는 매번 깜짝 놀라고, 왜 알람설정을 지울 생각은 못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둘째는 절대 이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식구들은 모두 아이폰이다. 와이프는 아직 갤럭시를 쓰고 있지만 다음 달이면 아이폰으로 바꿀 예정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아이폰 3대, 아이패드 4대, 맥북 1대, 애플워치 1대, 에어팟 프로 1대를 쓰고 있다. 딱히 애플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꽤 된다.


애플은 모바일 기기보다는 플랫폼을 판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회사다. iOS, iCloud, iTunes 등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고 거기에 연결할 수 있는 터미널로서 모바일 기기를 판다. 그래서 같은 애플 계정으로 세팅하면 아이폰이던, 아이패드던, 맥북이던 기기를 바꿔도 똑같은 콘텐츠와 환경에 접속해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다. 이 환경에 익숙해지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탄다는 게 너무 번거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점이 경쟁사를 압도하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편리함이 위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와 가족이 살아온 대부분의 흔적이 애플, 그리고 구글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진, 영상, 여행기록, 어플, 인터넷 기록, 유튜브 채널, 움직인 거리, 칼로리, 운동 기록, 인터넷에서 쓰는 모든 ID, password 등 전부 iCloud와 구글계정에 저장되어 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알고 싶다면 나의 애플, 구글계정만 알면 된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살아온 궤적이 누군가가 흥미 있어할 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그 누군가에 포함된다. 그래서 정말로 다행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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