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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Feb 05. 2023

나는 내추럴이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고양이 간식을 주고는 소파에 앉았다. 평소보다 많이 잤는데도 움직이기 싫었다. 한참을 앉아 유튜브와 인터넷을 스크롤링하다가 대충 요거트를 떠먹고는 풀업을 시작했다. 10kg 중량조끼를 입고 3세트를 하고 맨몸으로 2세트를 더 했다. 땀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다시 기진맥진해져 소파에 널브러졌다. 왜 인간은 운동을 해야 할까? 왜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빠지고, 머리를 쓰지 않으면 기억력이 떨어질까? 생각해 보면 심히 억울하다. 곰은 수개월을 꼼짝도 않고 겨울잠을 자지만 두터운 근육은 그대로다. 철새들은 평소에 운동을 안 해도 때가 되면 3천 km를 날아간다. 고양이는 하루 14시간을 자고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높이 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유독 근력이 약한, 지구력 몰빵 캐릭터다. 침팬지보다 몸집은 크지만 근력은 절반 수준이다. 극한까지 근력을 키워도 비슷한 크기의 포유류를 힘으로 제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이유는 다른 인간과 협력을 할 수 있는 지능과 지구력에 몰빵한 스탯을 바탕으로 하루종일 먹잇감을 쫓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단거리는 느리지만 땀을 배출하는 능력을 진화시킨 인간은 오랜 시간 달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사냥감이 빠르게 도망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어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외치며 하루종일 사냥감을 쫓았다. 땀이 나지 않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격한 움직임 뒤에는 열을 식히기 위한 긴 휴식이 필요해 인간들에게 쉽게 따라 잡혔다.


그러면 왜 하필 인간만은 근육이 안 쓰면 약해지도록 진화했을까? 그것은 근육은 칼로리 소모가 많은 사치스러운 장기이기 때문이다. 지방은 1kg 당 4~5kcal를 소모하지만, 골격근은 1kg 당 10 ~12kcal를 소모한다. 인간은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에너지 소모를 줄여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냥감이 줄어드는 시기가 되면 적게 움직이고 근육량을 줄여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존을 도모했다. 그러다 다시 사냥감이 늘어나면 움직임을 통해 근육을 점진적으로 키워 사냥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잠을 자는 곰은 잠에서 깨자마자 사냥을 해야 하고, 계절에 따른 이동 패턴이 고정된 철새는 패턴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이 진화해 이동 전에 에너지를 저장하기만 하면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긴 비행이 가능하다.


또한, 인간은 서식지가 제한된 다른 생물과 달리 툰드라에서 열대우림까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해서 살아간다. 그런 만큼 패턴에 따라 신체를 진화시키기보다는 다양한 환경과 변화에 적응이 쉽도록 진화했다. 결국 잉여 칼로리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능력도, 운동과 움직임에 따라 근육량이 변화하는 것도 모두 진화적 과정을 통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화된 결과다.


결국 내가 근육이 줄고 배가 나오는 이유는 우주를 움직이는 보편적 법칙인 진화적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건 핑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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