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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Jan 14. 2024

비극의 일상화

어김없이 새해가 시작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체감은 상대적이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역시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은 가속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기 때문이라는데 나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럴수록 새로운 경험과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해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AI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발전 속도를 보면 정말 수년 내에 인간이 하는 일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또한 가속되고 있다. 이제 파리협약 당시 목표로 삼은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기온 1.5도 상승 제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주식시장은 올해 미국이 금리인하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에 모든 관심과 예측이 집중되어 있으며, 한국은 야당 대표가 백주대낮에 칼에 피습당하고, 유명 배우가 경찰과 언론의 집요한 괴롭힘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등 사회적 갈등과 기득권의 패악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든 문제와 갈등과 아수라장은 공동체를 여러 개 집단으로 분할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단순하고 쉬운 내러티브로 구성하여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그 다툼과 갈등에서 사익과 기회를 추구하는 일부 엘리트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특정 집단의 이익에 기생하여 내러티브를 생산해 내는 지식인들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 명제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일종의 종교적 특성을 가진(개인의 신념과 결합하기 쉽다는 측면에서) 선언이다. 여기서 '권리'를 강조하면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로 이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 추구 권리를 충실히 이행한 성실한 자이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주어진 권리를 추구하지 않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걸맞은 존중과 배려를 해야 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에 마땅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스토리를 받아들이고 체화하면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하와 복지제도에 대한 정부지출 축소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반대 논리는 '누구나'에 방점이 찍힌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제도적인 허점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있다. 공동체는 그들이 최소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지원해야 하며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다양한 차이를 이용해 집단을 구분하고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기술은 다양하게 변주되고 활용된다. 특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기득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맥락을 활용하는 중국과의 갈등, 젠더, 종교, 지역, 세대 등을 기반으로 한 갈등, 또한 공인이 아닌데도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대중의 주의를 소모시키는 연예인들에 대한 폭로와 공격, 상대 정치인을 악마화하는 것 등등 의도를 가지고 갈등과 소란을 조장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비극으로서 실체를 드러내고, 갈등이 지속되는 한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갈등과 소란의 한복판에서 물러나 스스로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 갈등과 소란, 선정적인 이슈를 통해 과연 누가, 어떤 이득을 얻는지 한걸음 뒤에서 사안을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 외면한다 해도 이처럼 비극이 일상화되었을 때는 개인의 일상에 집중할 수 있는 평온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동력 삼아 이득을 추구하는 집단과 사람이 정말로 누구인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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