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세한도를 감상하며 제가 느낀 것은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의 감정이었습니다. 너무나 시리고 외롭고 서럽지만 정신은 생생이 살아있는, 그럼에도 너무 마음이 아렸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자, 천천히 입을 여는 추사였다.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의 감정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언어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있을 때 이 세 가지 감정은 나를 심연으로 빠지게 하고 가장 괴롭히기도 했던 것이었지. 한편 이 감정은 나를 더욱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네. 인간으로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의 감정에 익숙하다는 것은 비극일지는 모르나 본래의 나를 찾아들어가는 데에는 많은 도움을 준다.
깊이 외로워 봤는가?
처절한 외로움
처연한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는가?
오롯이 하늘과 나뿐인 세상의
처절한 외로움이 있은 연후에라야
나를 찾을 수 있는 한 줄기
동아줄을 발견할 수 있는 거라네.
타인의 영향을 일체 배제하고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것은 오롯이 외로워야지만 이룰 수 있는 세계지
그리움이라 했는가?
그리움이란 그저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니라네.
지난날 나의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더욱 아닐세.
그리움이란 본래 내가 온 곳으로 향하는
높고 높은 감정이네
내가 두고 온 본성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
그곳을 떠나와서 서럽고
내 신세가 자못 서럽고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서럽고 또
나를 외롭게 하니 자연히 그리움도 깊어지는 것일세.
서러움
왜 안 서러운가? 왜 안 서럽겠어
이렇게도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
이렇게도 저렇게도 어긋나버린 나의 인생
서러운 것. 서러운 것이 인생이네.
살아가는 이상 서럽지 않은 사람은 없네
나라고 왜 울지 않았겠는가?
왜 가슴에 멍이 들지 않았겠는가?
문드러져 있네.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을 못하고 문드러져 있었네.
그대, 서러운가?
그리운가?
외로운가?
그것은 자네가 누군가를 그리워해서도
누군가에 짓눌려 서러운 것이 아니네.
너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원래의 자리로 가고픈 자네 영혼의 외침이라네.
그러나 현실에선 그럴 수 없으니
외롭고, 그립고 서러운 것이라네.
이 땅에 태어나 서럽지 않았던 선인이 있었던가
원래 서러운 것이네.
모두가 그러하네.
그립지도, 서럽지도 외롭지도 않은 삶,
그것은 또 그것대로 무슨 맛이
난다고 할 수 있는가?
원래 그런 것이라네.
이 추사는 너무너무 외로웠네
또 서러웠네.
출처: 조선의 별, 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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