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을 끊는 방법,부제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였을까?



영조와 사도세자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였을까?




조선 역사상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예는 없기에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자주 회자된다.


몇년 전에는 한석규, 이제훈 주연으로 '비밀의 문'이라는 드라마까지 방영되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오늘 날에 가지는 의미는


현대인들의 '정신질환' 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고, 또 부자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연관을 가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보면서 조선시대 '왕'이 되는 것 그 시스템의 부조리와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오늘날 부자관계의 갈등이 다 담겨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권력 승계'와 관련이 되면서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되었고


결국,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아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버지가 원인을 제공한 것도 상당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때까지는 주로 영조-정조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대의적인 입장에서


풀어나가서 '사도세자'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는데




이제는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풀어간 책이나 미디어도 소개가 되어


사람들이 균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또 역사를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나는 영조가 아닌지 또 사도세자가 아닌지.


부자의 갈등이 우리가 겪고 있는 집안의 갈등과 무어가 다른지.




나아가 '정조'는 어릴 적 겪었던 이 비극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사도세자의 추승문제에 매달렸던 정조이산의 마음이 이해가되면서


정치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성격이나 체격적으로나 기질상 서로 반대였던 사도세자와 영조.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엇나갔던 아들, 사도세자.


그도 분명 똑똑하고 성군의 자질을 지녔지만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오는 충돌.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아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중재자는 없고



잘잘못을 떠나,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자면


사도세자의 비극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조선시대 왕의 제도라는 것이 참....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니.



과거의 비극을 고스란히 떠 안고 미래를 열어가야 했던


아들 정조이산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영조의 독백>






영조가 아들을 죽이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먼저 영조 - 정조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풀어나간 책, <정조의 비밀사관, 은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94235


영조: 너는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구나. 하지만 궁궐에서의 삶을 일반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제까지 눈앞에서 마주하고 지내던 사람이 한 번의 실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작은 우스갯소리가 불씨가 되어 영영 발을 들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곳.




그곳이 궁궐이다. 이런 궁궐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내가 왕이 되자 어머니는 조용히 역사의 뒤로 물러나는 것을 선택하셨다. 어머니의 출신을 두고 모함하고 무시하던 높으신 어른들에게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




궁녀들은 그전까진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아랫것이라 생각하다 한 번의 승은으로 후궁이 된 어머니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리 없었지. 자신들도 바라마지 않는 왕과의 동침을 어머니는 해낸 것. 남들에게 무시당해도 속 깊은 그곳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은 어머니였다. 물론 속으로야 문드러진 마음 달래느라 가끔 눈물도 흘리셨겠지만 비정한 궁궐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는 눈물로만 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다.



어머닌 내면을 숨기고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을 찾아 나섰다. 그녀는 인현왕후를 선택하셨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나를 왕으로 정녕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인현왕후도 돌아가시고 희빈 장씨도 비명에 돌아가셨다.



남은 것은 어머니였다. 어떤 의미에서 승자는 어머니였던 것인가. 나에 대한 연민에 빠져 있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불쌍해 보이셨는데 세월이 흘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때가 되니 어머니야말로 냉정한 분이셨던 것 같군, 허허허.”




은서: 아버지와 전하와의 관계는 어땠나요? 숙종 임금께서는 인현왕후, 희빈 장씨 그리고 숙빈 최씨를 번갈아 세웠다가 물리셨다 하며 왕권을 유지했잖아요.




영조: 아버지만의 방법이셨지. 그가 두려웠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도 한순간 칼날로 변하는 그.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멀리 있었던 사람. 죽음 이 순간 까지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닐까. 철이 들고 나니 형님과 나, 아버지는 그저 일반적인 친부모 관계가 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관심이 형님에게 기울 때는 나의 자리가 위태로워짐을 의미했고, 아버지의 관심이 내게 기울 때는 형님의 자리가 위태로워짐을 의미했다. 위태로워짐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바, 그렇게 우리들의 목숨은 권력이라는 미명하에 파리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자라는 것, 왕자라는 것, 왕족이라는 것은 다 허울 좋은 이름일 뿐 실제로는 보통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었다.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삶. 거동조차도 허락을 받지 않고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삶. 누군가의 권력에 의지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삶. 어찌 그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로부터는 한 번도 아들로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살아생전에 그를 아버지라 부른 기억도 없었다.”




은서: 어찌 그럴 수 있나요.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영조: 형과 나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어놓고 돌아가 버린 아버지 때문에 형님도 나도 인생을 이렇게 마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도 알고 보면 위태로운 왕권을 어렵게 유지해온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 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토록 어렵게 왕권을 유지해왔던 것일까. 신하들이 왕으로부터 가져오려는 그것. 왕이 신하들로부터 가져오려는 그것. 무엇을 위한 왕권이며 무엇을 위한 신권이었을까.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결국 내 손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은서: 하지만 임금께서는 노론세력들과 손을 잡으셨잖아요. 욕심이 있으셨던 것 아니세요?”




영조: 그대는 당돌하구나. 부정할 수는 없지. 그러나 단순하게만은 말할 수 없는 것. 노론의 일당들은 핏줄에 의해서만 종사가 보존되는 현실을 탓하며 나의 처지를 동정했다. 형보다 나은 아우인데 후궁의 소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될 수 없는 현실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아버지의 관심이 내게로 옮겨오던 때부터 나의 이성은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고 그런 나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 노론 일당이었지. 당시에는 내가 왕이 되는 것이 정의라 생각했다. 내가 나라를 더 잘 통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었고 순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세제의 자리에 올라가고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형님이 후사를 보는 것이었다. 병약하시긴 하셔도 아직은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출처] 정조이산, 월야문답: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였나 #2|작성자 생기충전김작가




사도세자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된 것은 영조임금이 가지고 있었던 정서적 불안감, 우울증의 영향이 컸다. 영조가 이렇게 된 데에는 또 아버지 숙종과의 관계, 형 경종과의 관계 어머니의 출신등에도 원인이 있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영조 그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아들의 죽음을 노론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어쨌든 아들을 죽이는 상황까지 갔던 것, 그것의 가장 큰 결정권자는 영조임금에게 있었으니까.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뿐이라고 볼 수 없고, 오늘 날 우리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혈연간의 갈등과도 비슷한 그림자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정조시대에 관련된 책을 두권정도 쓰면서 생각의 변화가 일었는데. 처음에는 나도 영조도 사도세자도 정치적 희생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 수록 관념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일은 점점 줄고 마치 현대인들처럼 심리적인 것, 교묘한 정치싸움.....이런 식으로 변해가더라.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주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자면 결국 부자관계가 굉장히 안 좋았다는 것. 두 사람의 성격의 불일치가 원인이었다는 것. 또 아무리 많은 이유를 갖다댄다 한들 아들의 죽음의 가장 핵심요인은 영조였다는 것이다.




신기하지....




영조임금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구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면 정치적으로도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는데 그런 분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정신병을 문제로 삼지만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영조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 또 영조의 문제를 따지면 그의 유년시절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 또 이런 식으로 돌고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닌 남에게 있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런 악연 혹은 악습을 끊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관습에 놓여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보는가 (고부갈등, 선후배갈등 등등. 그것이 해결되는 것은 더도 아니고 덜도아니고 한 사람의 의기로운 행동, 일상에서 삭트는 친절한 행동, 작은 한 걸음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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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정조시대 우리나라 문화의 산실 규장각: 규장각 앞에 자리잡은 정원은 우리나라 전통의 천지인


정신이 잘 나타난 곳으로 네모난 연못, 동그란 섬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으면 완벽한 우주의 모습이다.


즉 네모, 세모, 동그라미는 천지인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정원에 자주 볼 수 있는 양식>






후원에 자리잡은 정자. 정조임금은 이곳에서 자주 낚시를 했다한다. 지붕의 열십자 모양은


균형잡히고 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정조의 이상이 묻어난다. 부용정. 연못정자라는 뜻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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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체험판)

작가김예진출판수선재발매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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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이산#사도세자#영조#영조임금#정조#정조대왕#사도#뒤주#사도세자뒤주 태그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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