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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Nov 07. 2023

오스트리아 빈에서 클림트와 키스를

비엔나 여행기 3


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또 한 가지는 클림트의 '키스'와 마주한 순간이었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이것이 1위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떠나 트램을 타고 '링'이라 불리는 O자 모양의 도심 한복판을 트램으로 마저 돌아본 후 우리는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가기 전에 여행책을 찾아보거나, 지인들에게 어디에 가면 좋나고 물으면 1번으로 나오는 곳이었다. 정원이 예뻐서 겨울보다는 봄에 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궁전에 처음 발을 들여 상궁과 하궁 사이의 거대한 정원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아름답고 멋지게 느껴졌다. 마침 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서 더 예쁜 궁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벨베데레 상궁에서 바라본 전망. 정원과 하궁이 보인다.


벨베데레 상궁으로 들어가 표를 끊고 관람을 시작했다. 궁전 내부도 무척 화려하고, 예쁜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원과 하궁의 모습, 하늘이 정말 예쁘게 보였는데 '벨베데레'라는 이름이 '좋은(bel) 전망(veder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섬세한 장식과 정벽화, 곡선으로 장식된 조각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고풍스러운 조각이 사실은 그림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어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 당시 입체감을 주어 실제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그림 양식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어 가까이 벽에 다가가서 보니, 우와, 그 섬세한 조각이 음영으로 표현한 '평면의 그림'이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입체감이 느껴져 실제로 내 손바닥을 그 평면을 만지고서야 믿어질 정도였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계속 돌아다니며 벽면의 장식에 손을 대보았다. 에이 설마 저건 진짜겠지, 생각이 드는 것도 생생한 그림이었다.


벽부터 천정까지, 섬세한 조각처럼 보이는 그림들


드디어 그림이 전시된 전시실을 하나씩 돌기 시작했다. 압도하는 크기, 아우라가 느껴지는 귀족들의 모습, 실사처럼 무척이나 섬세한 그림이었다. 귀족들은 이렇게 가족의 기록을 남기는구나. 사진이라는 것도 없었던 그 당시의 서민은 흔적조차 없을 텐데, 이들은 이런 멋진 옷을 입고, 가족들이 모여, 유명한 화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이들의 풍요로운 삶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어 했구나. 그냥 그림만 볼 때는 몰랐는데,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그림의 배경 속에서 작가가 드러내고 싶어 했던 것이 느껴진다. 동물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아이들을 그려 커다란 농장을 일구어가는 가족이었음을, 큰 아들의 어깨에 걸쳐 맨 커다란 사냥총과 아버지를 가리키는 손의 방향에서 느껴지는 두 남자의 팽팽한 긴장감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수많은 격투와 전쟁을 이끌어야 했던 지도자 나폴레옹을, 위엄 있게, 강하게, 열정 넘치게, 파워풀하게 표현해 그의 기품을 한 껏 올려준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리고 화가는 무척이나 유명해져서 다른 지도자나 귀족들의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는 사진도 미디어도 없던 시대이니, 지도자들이 이런 작품의 표현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 꽤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마틴 반 메이텐스의 <에르되드의 니콜라우스 팔피 백작의 가족>, 자크 루이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모든 그림을 상세하게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가이드는 한 방에 그림 하나씩 정도를 대표적으로 설명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느 것 하나에 꽂히면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다음 방으로 좇아가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늦게 다음 방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그 방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헉, 하며 울컥 눈물이 맺혔다. 클림트의 <키스>였다.


사진이나 프린트물 등으로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것인데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작품은 생각보다 무척 컸고, 금빛은 압도당할 만큼 화려했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컬러는 환상적이었고, 세세한 무늬들은 섬세하고 우아했다. 아니, 사실은 그것들을 모두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그저 그 작품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도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차올라 눈을 크게 뜨고 미간을 좁히게 되었고,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왈칵 눈물이 차버렸다.


그 작품 앞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나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흘러내지지 않게 천천히 걸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는 조금씩 비집고 들어가 마침내 맨 앞 가운데에서 그 그림을 마주했다. 내 입은 이미 벌어져있었지만 내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물도 마르지 않았다. 눈은 점점 더 커졌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슬픈 장면을 마주할 때처럼 눈썹을 산모양으로 세운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클림트 <키스>


황금이 내뿜은 색채는 무척이나 화려하고 눈부셨다. 게다가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곳곳이 각각 다른 빛과 색으로 보여서 조금씩 각도와 자세를 바꿔가며 한참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보니 남자와 여자의 옷에 표현된 패턴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황금과 검은색 흰색이 어우러진 직사각형 패턴의 남성미와 세련미가 위엄을 느끼게 해 준다. 남자의 품에 푹 안겨있는 여자의 옷에는 구불구불 곡선과 원형의 알록달록한 꽃들이 여성미와 우아함, 아름다운을 느끼게 해 준다. 그 아래 두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곳은 마치 동화세계 같은 알록달록한 꽃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두 사람의 옷자락에서부터 여자의 다리와 꽃밭에 걸쳐 황금빛 나뭇잎 줄기가 촤르르 떨어져 있어 무척 매혹적이다.


그러고 보니 무릎 꿇은 여자의 발이 마치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꽃밭에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다. 발가락을 세우 힘이 들어간 발끝에서 떨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간절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얼굴은 더없이 평온하고, 자신을 온전히 품고 있는 이 남자의 사랑을 온전히 흡수하며 모든 것이 충족된 표정이다. 두 사람의 자세도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데, 여자가 반무릎을 꿇어 복종적이 모습 같지만, 한 손은 이 남자의 목덜미를 감싸며 사실상 이 관계를 주도하는 자와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무릎을 꿇어도 여자의 키가 작지 않아 보이는데, 만일 똑바로 서면 이 남자보다 훨씬 키가 클 것 같다. 실제로 클림트가 사랑한 여인은 키가 무척 컸다고 가이드는 이야기해 주었다.


이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오래 있으면 이 그림을 보려는 뒤에 있는 이들에게 실례일까 싶으면서도 떠날 수가 없어서 자세를 낮추어서 봤다가, 측면으로 빠져서 또 한참 그림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나뿐 아니라 같이 온 두 여인도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그림을 계속 감상하고 있었고, 더 좋았던 것은 그림에 빠져 감상하는 내내 가이드가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그림에서 나타나는 것, 이 작품 속의 여러 가지 의미, 클림트의 삶, 클린트의 여인, 이 작품과 얽힌 이야기들을 계속해주어서 오히려 몰입해서 그림을 더 섬세한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 작품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둔 것이 아니라 벽면에 아예 매립해 버린 것이어서 절대 다른 미술관으로 이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액자 프레임이 벽과 평면이고, 그림은 파인 벽에 들어가 있었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면 작품을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클림트의 키스는 바로 이곳에서 밖에 못 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가 꼭 와야 할 곳에 왔구나!


마침 벨베데르의 하궁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클림트에게 영감을 준, 반 고흐, 로뎅, 마티스...>(Klimt. Inspired by Van Gogh, Rodin, Matisse...)가 전시 제목이었다. 어머, 여기에서 고흐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니! 하궁의 전시실에는 클림트의 초기 작품부터 순서대로 전시가 되어있어서 그의 화풍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고흐와 모네, 마티스 등에게 영향을 받은 클림트의 그림들이 다른 화가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비슷한 화풍의 그림을 나란히 보면서 이 위대한 화가들도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구나 생각이 들었다.


모네(좌)와 클림트(우)의 작품
반 고흐(좌)와 클림트(우)의 작품
존 싱어 사전트(좌)와 클림트(우)의 작품


더욱 놀라운 것은 '어머, 이거 클림트 작품 맞아?' 할 정도로 클림트의 활동 초기의 그림은 실사에 가까운 정밀묘사였다. 실사라고 하기에도 너무 아름다운 표현과 색감. 기존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보다도 더 기품 있고, 섬세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클림트는 처음에 이런 그림 실력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궁이나 대학에서 천정벽화 의뢰를 받아왔다. 하지만 클림트는 기존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예술 문화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빈 대학에서 의뢰받은 천정벽화에서는 비난과 풍자를 적나라하게 담아내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빈 대학의 강한 반대로 그의 그림을 걸 수 없었다.


클림트의 초기 작품


사실 나는 클림트의 팬이 아니었다. 나는 반 고흐의 빅 팬이었고, 클림트의 그림을 사진들로 접했을 때도 예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작품에 금을 사용하는 건 알았는데,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클림트 아버지가 금세공사였대!"하는 말을 듣고서는, "그래서 그렇게 금을 아낌없이 칠했구나. 고흐는 물감 값도 없어서 동생한테 구걸하고 그랬는데. 금수저였네."라며 오히려 삐딱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하고 클림트의 생애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마음속으로 무척 미안해졌다. 그의 아버지가 금세공사여서 클림트는 금 다루는 법을 알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가정형편은 무척 어려웠다. 사실 그가 작품에 금을 칠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당시 보수적인 예술 문화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었다.



클림트 <물뱀 II>, <아담과 이브>


기존의 귀족들의 우아하고 고상한 그림에 반하는, 창녀, 나체가 드러나는 관능적이고 세속적인 그림에 귀한 금을 덕지덕지 칠했다며 그 당시 큰 비난을 받았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클림트는 당시의 그런 귀족적이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예술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 했고, 결국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예술가 집단인 분리파(제체시온)까지 형성했다. 빈 분리파에는 화가뿐 아니라, 조각, 공예, 건축 등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했다. 이때 분리파의 전시공간으로 건축한 전시관이 'Secession(제체시온)'이다. 외관만 봐도 클림트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는 건물이다. 이번 1박 2일 일정의 마지막 날이어서 전시는 벨베데르의 상궁과 하궁만 돌아보고 떠나야 했지만 다음에 다시 오면 제체시온 미술관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나는 그동안 크게 오해했던 클림트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돌아와서 며칠 동안 클림트의 생애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예술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자유로움을 위해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실천적 예술가, 시대에 맞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친 독창적인 예술가였다.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클림트의 생애를 조금 알아가고 그의 그림을 다시 보면서 내 안을 뜨겁게 채우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어린이들이 위인전을 인상깊게 읽고 나서 갖게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멋진 삶, 그런 열정적인 삶,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채워졌다. 마흔 넘어, 아직도 위인에게 삶의 영감을 얻는다. 반짝이던 클림트의 키스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덧, 결국 나는 그로부터 4개월 후, 봄에 아이들을 데리고 클림트의 키스를 다시 보러 갔다. 그리고 분리파 전시관인 제체시온에도 갔다. 클림트의 <키스>를 마주했을 때처럼, 제체시온의 첫 전시를 위해 클림트가 그린 <베토벤 프리즈> 벽화를 보고 눈물이 왈칵 고였다.


분리파 전시관 Secession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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