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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Apr 17. 2019

모르는 동네 맛집을 왜 가냐고요?

논현동 <꼼다비뛰드>

식당 웨이팅은 정말 싫다.


대기 장소가 없는 식당에서 웨이팅은 끔찍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미세먼지가 내리쬐면, 밥 보기도 전에 밥맛은 벌써 다 떨어져있으니까.

대기 장소가 있는 곳에서의 웨이팅은 옹졸하다. 한 자리 꿰차고 여유롭게 밥 먹는 사람들 지켜보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얘기는 그만 나누고 밥이나 빨리 먹고 일어나란 말이야같은 못된 심보가 생기니까.


꼼다비뛰드는 작년부터 알고 있던 베이커리다. 방문한 사람들의 부정적 평가는 0에 수렴하고, 11시 오픈이지만 9시 30분부터 줄을 서야 메뉴 선택권이 주어지는 곳. 빵이 맛있어봐야 뭐 얼마나 맛있겠어 빵 맛이 뭐 다 비슷하지, 맨 처음엔 이렇게 애써 신 밀가루 아니 신 포도 취급을 하며 이 고매한 베이커리를 외면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왜 자꾸자꾸 꼼다비뛰드에 가고 자꾸자꾸 SNS에 찬양글을 올리는 거야. 난 웨이팅이 정말 싫은 사람인데!

논현동은 꼼다비뛰드가 있는 곳이고 나의 거주지 목동으로부터 약 1시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강남 인근에 대한 내 유일한 지리 경험은 미국에서 7년 살다온 중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던 고난,아니 과외 때문에 압구정에 1년 동안 들락날락한 것뿐이다. 그래. 빵 하나 먹자고 쌩판 모르는 동네에 가다니 말도 안되지. 1시간 걸려서 가게 앞에 도착한 다음에, 또 1시간 기다려서 빵을 사고, 그 다음엔 뭐 어쩔건데?

그런데 오늘 미세먼지 수치는 보통이었고, 어쩌다보니 7시에 눈이 떠졌고, 다음주부터는 평일 낮에 시간이 나지 않을 예정이고, 마침 점심부터 저녁까지 약속은 하나도 없고, 무슨 뜻인지 전혀 추측도 안되고 발음도 어려운 '꼼다비뛰드'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렇게 작년부터 오탈자도 없이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지,

그러다보니 어느새 오전 10시에 꼼다비뛰드 웨이팅 줄에 서있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오는 동네에 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웨이팅을 하고 10시 55분에 가게에 입성했다. 재방문은 그야말로 기약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주문을 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에 꾸물꾸물 적어놓은 낯선 이름의 메뉴들. 어 샌드위치는 무화과 프리슈토, 브리 라슨, 아니 브리 꼼므, 그릴드, 정봉 버터 하나씩 주시구요, 마들렌은 카카오닙스, 레몬, 쑥 하나씩 주세요.


바게뜨 샌드위치는 따뜻할 때 '길빵'을 해야한다고 했다. 바게뜨가 입천장을 공격하니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SNS가 시킨 주의사항들을 그대로 수행했다. 좁은 가게를 그득그득 채운 사람들을 어쩐지 우쭐한 기분으로 헤치고 나오면서 꺼낸 그릴드 샌드위치. 많이 먹으면 입천장이 아야하니까 앞니로 조금씩만.

피망쨈의 풍미가 난다던 그릴드 샌드위치에서는 과연 피망쨈의 풍미가 났다. 매운 맛도 살짝 난다던 그릴드 샌드위치에서는 역시나 매운 맛도 살짝 났다. SNS에서 말하던 그 맛 그대로였다. 봉지에 담긴 다른 빵들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혼자 먹으니 샌드위치 하나로도 배가 불러서 무리였다.

사실 샌드위치에서는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빵 맛은 빵 맛이었고 쨈 맛은 쨈 맛이었고 치즈 맛은 치즈 맛이었다. 하지만 살짝 뜨거워진 날씨에 처음 보는 동네의 꽃집을 지나치면서 말없이 길에서 빵을 씹어먹는 이 경험. 바게뜨를 우적우적 뜯으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걸음을 옮기면서 빵이 담긴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는 이 상황.


오늘은 아무런 약속이 없었고 논현동은 내가 모르는 동네였다. 그래서 나는 샌드위치를 길에서 먹으면서 모바일 지도도 켜지 않은 채 도로에 대충 걸린 이정표만 보고 갈 곳을 정하며 휘적휘적 걸었다. 나에게 오늘 낯선 동네에서 맛집을 간다는 건 이런 일이었다. 이제 웨이팅이 있는 맛집을 예전만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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