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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May 09. 2022

분쟁지역 연구의 기술, 그리고 윤리

연구자로 인정받으며, 참가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만두박사 적당히 적어야지 내가 오늘 얘기한 거 미주알고주알 논문에 다 쓰면 안 돼! 난 자기 믿어!"


"아이고 그럼요! 꼭 필요한 내용만 쓸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치앙마이를 거점으로 삼아 한창 현장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여러 사람들을 수차례씩 만나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썰을 풀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오늘은 분쟁지역에서 연구를 하기 위한 작전 플랜과, 그리고 연구 계획이 어떻게 틀어지는지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혹시 분쟁지역에서 질적 연구를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요약해 올립니다.


덧: 저는 에스노그라피 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 철저히 엘리트 인터뷰 중심으로 질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정말 큰 결과를 얻은 누구처럼 반군 영토에서 몇 달 동안 지내며 신뢰를 쌓아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간부진의 결정 논리를 알고자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따라 제 경험은 전통적인 질적 연구, 또는 해석적 연구방법과 결이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이 부분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쟁지역 현장연구의 기술: 쌈마이 하면서, 윤리적이게


분쟁지역에서의 현장연구는 다른 연구와 방향과 절차가 좀 다릅니다. 생사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행정적인 절차 대신 연구 참가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탐문 취조(?) 대신 참가자들의 편안함을 우선으로 하는 연구전략을 짜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연구 참가자의 권리 명시 절차입니다. 연구자는 인터뷰 전에 윤리적인 연구활동을 위해 연구 참가자들에게 완전 익명, 개인정보 보호 방법, 언제든지 연구동의를 거부할 권리 등을 고지합니다. 익명성에 크게 민감해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복 받은 연구과제들은 보통 종이로 된 동의서를 내밉니다만, 저는 이 절차를 무조건 육성으로 했습니다. 녹음도 하지 않습니다. 참가자들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최대한 서류를 남기지 않는 쪽으로 연구전략을 잡았거든요.


지도교수님에 따르면 본인 커리어 내내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하셨다고 합니다만... 만약 실제로 데이터를 압수당할 위험에 처하면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참가자들의 개인정보는 목숨을 걸고 지킬 각오로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비슷할겁니다.


또, 정해진 설문지, 또는 인터뷰 질문 리스트를 준비하는 것보단 체계가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기로 했습니다. 물론 정해진 질문을 하고, 체계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모든 참가자들에게 엇비슷한 정보를 얻는 게 연구결과 도출을 위해 제일 깔끔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있을 수 있고, 또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인터뷰 절차에 질려 "나랑 만나는 게 그냥 정보를 캐 내기 위해 만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연구 중 참가자가 연구자에게 착취당하는 그림이 그려지면 곤란합니다. 


지금껏 인터뷰를 하며 제가 제일로 많이 반복한 말은 "어쩌면 곤란한 질문을 드리는 건데, 답하기 곤란하면 굳이 답 안 해도 됩니다"였습니다. 웃으며 답변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그럼 그 부분은 다음 기회에 얘기합시다" 라 하시며 주제를 바꾸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저는 인터뷰를 하며 녹음기를 쓰는 걸 꺼렸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녹음기를 틀었을 때 진솔한 답변을 하는데 조금 꺼리는 면이 없잖아 있기도 하고, 또 행여나 제3자에게 연구 데이터를 압수당해  인터뷰 녹음본이 노출된다면 목소리를 통해 누가 제게 어떤 말을 했는지 바로 알아챌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참가자의 절대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에서는 녹음기가 참 요긴하게 쓰이겠지만, 자칫하면 생사가 갈리는 국경지대에서 녹음기는 연구를 돕는 도구가 아닌, 연구를 방해하는 도구라 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만나던 항상 최대한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연구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연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각각 정말 대단한 일들을 해 내고, 또 쉽게 접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하신 분들입니다. 정글에서, 그리고 산에서 목숨을 그대로 내놓고 평생을 투쟁하신 분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분들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또 그분들의 경험과 시선을 들을 수 있는 건 정말로 귀중한 혜택이지, 연구자의 권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연구 참가자 분들도 본인들이 이용당할 때가 많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제가 인터뷰한 어느 한 분은 제 어깨에 손을 얹으며 "스치는 인연보다 10년 가는 우정이 더 좋은 것처럼, 자기도 인터뷰 다 했다고 쌩- 내빼지 말고 오래오래 연락하면서 지냅시다" 당부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마 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이 끊기는 연구자들을 수없이 보며 상심하신 적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자세를 유지한 것을 많은 참가자 분들이 굉장히 좋게 봐주시고, 더 많은 얘기를 해 주신 것 같습니다.


2016년, 에야와디 주. 어느 정부 대표단과 함께 인터뷰를 위한 인터뷰를 위한 출장을 지원 나갔고, 모든 게 형식적이었습니다.




"누구나 쳐맞기 전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하지만... 왜, 누구든지 맞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요? 제 연구윤리 절차도 딱 그 모양이었답니다. 오늘도 실시간으로 제가 세운 연구 기준이 현장에서 기분 좋게 어그러져 전전긍긍하고 있답니다. 


참가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아주 세심하게 준비한 연구 절차인데... 몇몇 분들은 제가 인터뷰 시작을 위해 나열한 연구 참가자의 권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분은 같이 만난 어느 더운 저녁 얼른 얼음컵에 맥주를 따르며 "응, 응, 응 그렇지, 그렇지- 아유, 굳이 뭐 이렇게까지..."라고 하시며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렸고, 어떤 다른 한 분은 제가 참가자 권리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웃으며 "뭐 이리 사무적이야? 얼른 재미난 얘기나 합시다" 하며 아예 신경을 쓰지 않기도 했습니다. 


(행여나 REB에서 볼까 봐 명확히 적어 두자면: 그런 일이 있으면 모두 다 제가 간곡히 다그쳐서 결국 자세히 경청하고 연구 동의를 해 주셨습니다 ^^;)


2016년, 에야와디 주 어딘가. 사실 미얀마는 군부의 삼엄함과는 반대로, 외국인과는 무적 격의 없는 소통을 좋아해서 그런지, 제가 격식을 차리는 걸 어색해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제 인터뷰 절차와 윤리적인 연구방법이 참가자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아 의아해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를 굉장히 미심쩍어하셨던 '아잔'이라는 분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샨주 무장단체를 옮겨 활동하다 결국 어느 한 무장단체의 지도부 최상층까지 오르셨던 분입니다. 왕년엔 군부가 그분을 척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8-90년대부터 여러 연구자들과 언론인들과 접촉이 잦으신 분이죠. 제가 찾아뵌 날도 박사생을 여러 명 만나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잡아 만난 아잔은 인터뷰 내내 제 인터뷰 형식에 큰 의문을 가지셨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뷰 초반 그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말로 연구 참가자의 권리를 나열해드렸을 때, 그분은 "어디는 아주 긴 서류에 여기저기 사인하라 하더라고..." 말씀하시며 서류 없이 참가자의 동의를 구하는 제 모습을 의아해하셨습니다.


또,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마무리를 하던 중, 아잔이 놀라 제게 물었습니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까 왜 오디오를 녹음하지 않았지?"


"헤헤 하지만 이 공책에 말씀하신걸 열심히 받아 적지 않았습니까?"


위에 언급한 대로 저는 인터뷰를 하며 녹음기를 쓰는 걸 꺼리는 편입니다. 실제로 아잔과의 만남 후 찾아뵌 몇몇 참가자 분들께서는 녹음기를 켜기 전엔 정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말씀을 많이 하시다가, 녹음이 사용 동의를 받은 후 녹음기를 켜자마자 표정이 굳으며 마치 기자회견을 하듯 말을 신중하게 고르기도 하셨습니다. 어느 한 분은 중간에 "이 얘기는 녹음기 켜 있는 상황에서는 못하겠구먼" 하시며 녹취에 대한 부담을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단체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분이라 그런지, 민감한 대화의 증거가 남는 상황을 극도로 꺼리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다르게, 아잔은 녹음기를 틀고, 확실한 행정처리를 위해 서류 다발을 들고 다녔던 연구자들과 저를 비교하며 이 친구가 과연 제대로 된 연구자가 맞나- 하시며 미심쩍어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차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아잔은 "나중에 시간이 빌 때 봅시다" 하며 에둘러 팔로우업 미팅에 난색을 보이셨습니다. 아마 시간낭비를 하진 않았나, 믿지 못할 사람이라 난처한 상황에 처하진 않을까-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


참가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구절차가 오히려 참가자를 불편하게 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굳이 치앙마이 구시가지로 돌아서 귀가했습니다 ㅎ_ㅎ




연구자로 존중받으면서, 참가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제목은 좀 거창하게 달았지만, 사실 딱 떨어지는 답은 없습니다. 모두 다른 연구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또 각자 다른 연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정보수집을 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딱 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민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처한 상황,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민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저 또한 먼저 현장연구를 하신 분들의 노트와 회고를 읽으며 참가자들에게 연구자로서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윤리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짐작하신 분들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리안 푸지(Lee Ann Fujii 2018)의 Relational Interviewing (관계적 인터뷰) 방법을 자세히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구 참가자들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좋던, 나쁘던,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유지하는 걸 최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존중과 참가자 보호를 최우선의 가치로 올리고, 나머지는 케바케로 탄력 있게 결정하라는 그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녹음기도 켜 보기도, 꺼 보기도 하고, 질문도 각기 다르게 해 보고, 또 인터뷰가 끝난 후 뭐가 잘 됐는지, 뭐가 부족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게 좋겠습니다.  


제 지도 교수님도 현장연구를 나가기 전 미팅에서 "연구윤리는 만두박사가 이미 잘 아니까, 절차니, 연구전략이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단 가서 많이 만나고, 듣고 와" 라 당부하시기도 하셨고요.


물론 성과는... 제가 현장연구를 더 해봐야 알겠습니다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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