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82세, 고려불화 무형문화재
아침들 먹었지?
간단하게 먹고 왔어요.
어제 우리 딸들이 와서 술 한잔하고 가서 피로하고 그래서 인터뷰 안 하려다가 했어. (웃음) 문화재가 뭔지 물어봐요. 나도 나지만, 무형문화재가 뭔지에 대해 물어봐요. 다 물어보면 내가 다 답변할 수 있어. 내가 문화재청 단청 전문이야.
네. 그럼 본격적으로 인터뷰 시작할게요. 우선 할아버지 성함과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김종욱. 내가 82살이야. 82. 정정해 보여? 네가 보기엔 내가 정정해 보이냐?
건강해 보이세요.
근데 자고 일어나면 몸이 뻣뻣해서 하체가 아파. 그래서 지팡이 지고 다니는 사람을 이해하겠다.
요즘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하루 일과가 6시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목욕하고 인제 30분 몸풀기 운동하고, 아침 8시에 밥 먹고, 걸어오는 거. 작업하다가 무료하고 그러면 왔다 갔다 해. 4,8,32. 32분은 걷는다고. 여든둘 먹은 사람이 건강한 이유가 뭐냐면 집이랑 8분 걸려. 점심 먹으러 가는데 8분, 집 가는데 8분, 왔다 갔다 하면 30분 운동하잖아요. 그리고 한 가지에 몰입을 하다 보니까 건강에 좋은 거 같아. 몰입을 하니까. 앞으로 한 5년은 살겠지 뭐. 아직까진 건강하니까. 근데 다리가 아파. 다리가 굳어가는 것 같아.
운동하시고, 작업실 오시면 어떤 그림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산수화 열심히 해. 요새 하는 건 고려불화도 있고. 기본이 산수화 연습이에요. 얼마 있음 고려불화 마무리할 거야. 수원시 자치회에서 10월 초순에 한 열흘 전시하거든? 그런 거 준비하는 거야 내가. 그런 거 준비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산수화 하는 거야.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신 거예요?
내가 13살부터 했어. 71년. 13살 먹었을 때 6.25 사변이 일어났어요. 용화사라는 절이 있어. 강원도에서 오신 스님이 한 분이 계셨어. 화홍 스님이 회각 스님한테 나를 소개했어. 내가 그 스님을 따라서 머리 깎고 따라다녔지. 내가 학벌 졸업장이면 국민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거지. 내가 딱히 학력도 없고 다른 연줄도 없고 스님 따라 밥이나 얻으러 먹으러 갔다가 일했던 게 오늘날까지 이어온 거야. 쭉 온 거야. 우리 때는 먹는 게 없었어. 먹는 게 제일 중요해 먹는 게. 피난을 가서 몇 월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도토리를 따러 갔어. 도토리를 으깨서 밥을 해 먹는데, 잠자리 날개 마냥 두대, 석대, 넉대 인천 상륙작적을 내가 봤어요. 안양에서 한 갈래는 남한으로 가고 하나는 북쪽으로 가더라고. 그렇게 해서 난리를 겪었지. 그러는 중에 같이 그림 그리다가 나간 사람들 많아. 근데 나는 한 길을 걸어왔지. 내가 처음 20년간은 단청을 했지. 단청이 뭐냐면 말이야. 금목수화토. 우리나라 문화의 모든 근간은 오행사상에 의해 이뤄졌다. 금목수화토 오행사상에 의해서 청황적 백흑 그 색을 가감해서 색깔을 해서 건조물이나 전적, 책이나 공예품이나 도자기 조상품이나 불화에 그림이나 문양을 그리는 게 단청이란 말이야. 그렇게 겪으려면 최소 단청을 20년 해야 되고, 내가 벽화를 최소 20년을 했어요. 저 78년도에 전국의 큰 벽화를 내가 다 그렸어요. 그때 남대문을 내가 맡아가지고 단청을 했어요. 단청을 20년 이상하고 벽화를 20년 이상했고, 그리고 불화.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신지는요?
무형문화재 된지는 1999년. 거의 20년 돼가네요. 그 문화재가 별거 아니에요. 문화재보다 더 잘하는 사람도 많고 공무원들이 더 잘하는 사람을 발굴해야 돼요. 문화재를 아끼고 정신적으로 그만한 지주가 있으면서 실력 있는 게 중요하지 지방문화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문명국이란 뭐냐면 옛날부터 내려온 풍속 습관이 발달한 게 문명국이라고. 나는 경기도 문화재 단청장 김종욱은 뭐냐. 옛날 풍속 습관, 옛날부터 내려오는 단청 기술을 보유한 기능보유자라고 기능보유자.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전통문화란 뭐냐면 내 것을 10프로나 20프로를 가미할지언정 옛날 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내려오는 걸 전통문화예요.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니야. 옛날 것대로 해야지. 옛날 것 고려불화를 복원시키는 거지. 전시실에 있는 게 그거예요.
오늘은 무슨 작업하실 거예요?
새로운 작업할 거야. 인터뷰하고. 화분도 옮겨두고.
(작업하실 준비를 하신다)
붓 진짜 많네요. 필방에서 구입하세요?
내가 만들어 쓰고 그래.
그리고 계신 건 어떤 그림이에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이게 다 명칭이 있어.
먹으로 스케치하고 덧칠해도 번지지는 않네요?
이게 아굣물이라. 풀을 잘 맞춰야지, 번져서는 되겠냐. 번지면 안 되는 거지. 이게 접착제 아굣물이니까. 다 순서가 있어요.
그림에 색을 몇 번 덧입히시는 거예요?
14번. 빨간색만 14번. 종이가 아니라 이 뒤에는 창호지 7장 붙고, 이게 면 아사야. 나중에 이 아사 면천에 물칠 하면 바닥에서 똑 떨어져. 떼기 어려우면 어떻게 그리겠어.
빨간색이 되게 예쁜 것 같아요. 발색이.
이건 돌가루를 아교에 개어서 하는 거야.
색깔도 섞으시는 거죠?
그건 만들어야지.
그림 완성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겠어요.
5개월은 걸려요.
이것도 개인이 살 수 있는 그림이에요?
고려불화는 파는 게 아니야.
그림 그릴 이미지는 어디서 얻으세요?
수묵화는 내가 검색해서 찾은 이미지에 물감으로 색 넣어서 그리는 거야. 수묵화 그리기 좋게. 이미지를. 그게 공부야. 파악을 해야지. 만드는 작업을 해야지. 내가 만들어야지 내가. 이렇게 만들어야지.
(재료를 소개해주신다)
이리 와봐. 이 속에 있는 게 까만 진 먹이야. 봐라. 제일 진한 먹. 원먹 자체야. 요거는 덜 진한 먹. 중간 먹. 수묵에서 수묵이라고 해. 엷은 먹. 이건 더 엷은 먹. 이건 더더 엷은 먹. 이건 제일 엷은 먹. 이렇게 해서 그리는 걸 수묵이라고 해. 동양화는 수묵에 담채로 엷은 색깔로 슬쩍 집어넣는 거야. 6단계잖아요. 붓으로 농간을 부려가지고. 물감 타서 술술 그리고. 담요에 작품을 깔고 물 뿜는 걸 뿌려서 축축할 때 그리는 게 기술이거든. 착착착 번져나가는.
사진 없이 그려본 적도 있으세요?
산에 가서 직접 그려야 돼. 원래 나도 많이 했어.
넌 서양화 그리나?
서양화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야. 이건 선과 음양. 서양화는 입체의 음양이야. 이건 먹으로 다 농도를 맞추는 거야. 미술 하는 사람은 균형, 구도가 있잖아요. 계산을 하거든? 어떻게 하면 안정감이 느껴지는지 어떻게 하면 불안한 구도인지를 다 생각하고 계산해서 그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치매가 올 수 없지.
고려 불화의 특징은 뭐예요?
동양화는 시, 서, 화. 그림 설명이 있어야 되고, 글씨도 잘 써야 되고, 그림 잘 그려야 되고. 그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야. 고려불화는 옛날 걸 복원해서 채색을 해서 그리는 거야. 이게 국보 218호인데, 전시할 거야. 절에서 보는 탱화는 조선 불화인데, 이건 더 색깔을 죽여가지고. 은은하게. 옛날 것 그대로 원화에 가깝게 그리는 거지. 색이 현란하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면서 푸르지도 않고 은은한 것이 고려불화의 특징이야.
색을 은은하게 만드는 할아버지만의 노하우는?
기술이지. 배합. 채색, 배합하는 건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야. 이거 들어봐, 돌이지 돌. 돌가루. 이상하게 말이야. 돌가루가 여러 가지 색이 다 나. 20년 정도 썼을 거야. 내가 몇십 년 우리 스님을 위해 보관한 거지. 20년 전부터. 요즘 절에 가면 부적 쓰잖냐. 그 부적. 빨간 거. 이게 그거야.
작품이 맘에 들지 않을 때는?
버리지. 버려야 돼. 내가 보관하고 있을 수 없어요. 수준급으로 오려면, 이론도 둘째 문제고 계속 많이 연습하고 많이 그리고 많이 실수하고 그랬을 때 성공하는 거야. 동양화 몇 만장은 그려야 되는 거야. 내가 몇십 년을 했으니까.
그림 그리는 삶이 70년 되신 거잖아요. 여태까지 그림을 그리시면서 포기하고 싶으셨을 때도 있으셨나요?
그럼 안되지. 거기에 몰입해야지. 밥 먹을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해야지.
무아지경으로요?
무의 삼배지. 삼배에 들어가야 돼. 다 잊어버려야 돼. 사실 욕심부릴 것도 없거든. 맘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저도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게 맞나?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의 방향이 맞나? 하고 막연할 때가 있거든요.
내가 딱 책임을 잡고 오늘내일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야지. 딱 그만두더라도 말이야. 모든 사람이 만족해서 직업을 잡는 사람이 없어요. 주체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다 노력해서 하는 거예요. 무슨 일이고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되고, 나 일하면서 후회한 적 없어.
젊으셨을 때, 작업이 잘 팔리지 않을 땐 일도 하셨어요? 일과 작업을 병행하는 건 어떻게 하셨어요?
난 불화 같은 거 몇천만 원짜리 맡아. 그러다 보니 돈 벌고 기술 배우고. 그냥 그림만 그리고 백만 원짜리 받아봐라. 한 달 생활비 되는 거야. 일도 하고 기술도 늘고 공부도 하고 노력도 하고. 그러니까 달인이 돼야 되는 거야. 이론적으로 조금 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림이고 뭐든지 많이 해보면 돼. 많이. 인생 경험이 중요한 거야. 많이 슬퍼도 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늙어가는 것도 받아들여야지. 생로병사 받아야겠어. 아픈 것도 남이라고 내가 아픈데 안 아프겠나. 그걸 받아들여야지 거스를 수가 없는 거야. 여기 와서 시간 보내고 일하고. 이 자리를 지켜야 될 것 아니야. 삶에서 죽음이 생각나지만, 아 나도 갈길이 얼마 안 남았구나 생각나더라도 자꾸 돌려야지. 나도 내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인지하지. 내가 사람인데. 내가 무슨 성인군자냐. 나도 너희랑 똑같은데, 내가 자꾸 돌리지. 개탄스럽지 삶이. 내가 제일 부러운 게 젊을 때가 제일 부러운 것 같아. 특별한 재미가 없잖아. 특별한 낙이 없잖아. 니들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또 저희 때는 저희대로 힘들잖아요. 복잡하고.
그게 좋은 거야. 우린 맘대로 못해. (웃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겠죠?
음식점이 있어요. 음식 배달하는 사람. 큰 채판이 있어. 동대문 시장 가게를 요리저리 비켜가고, 모든지 달인이 되면 할 수가 있는 거야. 그 사람은 거기에 숙달이 됐거든. 무거운 물건을 드는 사람이 텔레비전 나오는 걸 봤는데, 다른 사람은 못 드는데 그 사람은 요령이 있어. 뱃심으로 튕겨서 올리는 거야. 요령이 있는 거야.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달인이에요. 내가 얘기했지만, 뭐든지 오래 해서 실패도 많이 하고 오래 하고 거기서 터득을 하는 게 최고란 말이야. 이론은 둘째고. 이제 자네들이 할 일이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시다면?
바람 없어요. 이렇게 살다 가는 거예요. 우리 자식들이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애들 넷 뒀거든. 잘 살고 못 살고 맘대로 안되고 내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우리랑 생각이 달라요.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하는 작업 끝나면, 나랑 칼국수 먹고 바지락 국수 먹고 하자고.(웃음) 그때 봐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했을 때, 습관이 생긴다. 일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위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게 되는 노하우 이면서 오랜 세월 삶에서 얻은 지혜다. 인터뷰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법이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비슷한 내용일지라도 각자의 삶에서 체득한 언어가 미묘하게 다르다. 예술가로 살아오신 삶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또 여쭤보았다. 인터뷰 내내 예술가의 고집과 패기가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을 졌고, 후회 없이 살았다는 말씀이 남는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