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69세, 제일 대장간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49년생. 69세. 천재동.
요즘 대장간에 얼마나 계세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요일에는 일은 안 하죠.
대장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47년.
47년이나 여기에서 하신 거예요? 20대 때부터?
22살 때부터 했어요.
어떻게 대장장이가 되셨어요?
원래 작은 아버지가 이걸 했었더라. 서울 신당동에서. 중앙시장 있잖아. 거기서 하다가 작은 아버지가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이리로 내려온 거지. 야구장 옆에서 남의 집 살고 여기 와서 남의 집 살다가 내가 하는 거지 이제. 우리 일 배울 땐, 맞아가면서 배웠어. 국민학교 졸업하고 작은 아버지한테 배웠으니까.
현재는 대장간을 혼자 운영하시는 거예요?
이걸 배우는 사람이 없어가지고 가르치고 싶어도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까 맥이 끊기는 거지. 지금은 이제 누굴 가르치고 싶어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시카매 가지고. 힘들고. 배워놓으면 밥은 먹고사는데, 요즘 세상은 진짜 욕만 해도 신고하는 판인데. 옛날 같음 맞아가면서 하는데, 배우는 사람도 없고. 이것보다 더 좋은 일도 안 배우는데 누가 배우려고 그래. 옛날에는 30년 전만 해도 와서 일 좀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지금은 뭐 그런 게 어딨어?
주로 무엇을 만드세요?
주로 공사판에서 쓰는 거. 만드는 건 다 만들죠.
요새도 주문 많이 들어오나요?
주문 들어오면 만들어주고 하지. 여기는 아직도 어르신들도 많고, 농사짓는 분들도 계셔서 변두리에서도 와. 단골손님들이 오래되고 거래처 있으니까 해 먹는 거지. 40년이 넘었는데 거래처가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 옛날엔 몇십 명씩 왔는데, 안 오시는 분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야 돼. 세월이 흐르고 나이 먹고 그러면 안오구. 사람이 생각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지 뭐.
(거래처 할아버지 등장. 두 분이 상의하시면서 물건을 만드신다)
두 분이 친구세요?
응. 물건 떨어지면 갖다 주고.
거래처 할아버지는 매일 오세요?
맨날은 아니고 주문 같은 거 하면 오고.
방금 전에 어떤 작업을 하신 거예요?
시험해 본거야. 시험. 아파트 공사판에서 쓰는 거지. 집 짓는데. 건설회사 같은데, 집 짓는데 도구지 뭐 도구.
불은 몇 도예요? 엄청 빨갛던데.
1000도가 넘지. 쇠가 익고 쇠가 녹으니까. 한 1300도 정도 될 거야.
달군 다음에 물러질 때 두드렸다가 물에 담갔다가 식혀서 만드시는 거죠?
그렇지.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구는 뭐예요?
큰 거 만들려면 어려운 게 있지. 까다로운 건 하도 오래 일했으니까 이젠 딱히 어려운 건 없는데 혼자서 하니까 힘든 건 있지.
만드셨던 것 중에 큰 구조물은 무엇이었나요?
장식품 같은 거 만들고 그랬죠.
궁금해서 자꾸자꾸 묻게 되네요. (웃음)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뭐예요?
지금은 많이 팔리는 게 중국에서 공사판에서 쓰는 것들.
물건이 굉장히 많아요. 물건은 어떻게 찾으세요?
되게 많아요. 가짓수는 많아. 수백 가지니까. 내가 아는 거 찾아주고 손님이 알아서 찾아가고.
여름에 일하시는 건 괜찮으세요?
한여름에는 낮에 일 못해요. 한여름에 뭐 죽을 일 있나? 땀 찍찍 흘리면서 나이도 있는데? 여름엔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낮엔 일 못해요. 겨울에는 할만하지.
일하시면서 다치신 데는 없어요?
처음에는 많이 다쳤었지. 다쳤다고 일을 안 하면 되잖어. 오래 했으니까 이젠 눈 감도도 하지만, 처음엔 다치면서 일 배우는 거야.
대장간 일이 힘드실 때도 있으셨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한 이유는?
우리 때는 보릿고개고 배고플 때잖아요. 할 수 없이 배우지도 못하고 그랬으니까 이거 하는 거지. 다른 걸 할 수도 없고.
아까부터 유심히 봤는데, 기계들이 다 오래돼 보이는데 멋스러워 보여요.
4-50년 정도 됐죠. 이거 모루라고 하거든? 이거 미국에서 온 거야. 디딤. 때리는 거. 저것도 내가 50년을 가지고 있는 건데. 저거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거야. 50년 전에. 여기서 47년 됐으니까. 100kg 넘지. 혼자 못 들어. 망치도 내 손에 맞춰서 쓰는 거지. 작업대 하고 기계 하고. 기계 없이는 혼자 못해요. 다 때리고 하니까. 구부리고 자르는 거. 이 집도 6.25 때 집이여 이게. 내 땅은 아니지만, 내가 이거 수리하고 그냥 그대로 해서 지붕만 덮고.
박물관 만드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자긍심을 갖고 하는 거지. 이 일로 밥을 먹고 사니까. 아무리 발달되고 그래도 지금도 미국이나 일본 변두리에 가면 대장간이 있어. 아무리 발달되었어도 대장간이 있어.
이 자체로 역사네요. 여기 그대로 전시돼야 될 것 같아요. 저도 제 것을 꾸준히 열심히 오래도록 해보고 싶네요. 몇십 년을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자기가 하기 나름이고. 내 직업이다 하고 해야지. 지겹다 하면 못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한 길을 꾸준히 오신 거잖아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밥이야 먹고사니까. 내 직업이니까 하는 거지. 직업 싫어하면 못 하는 거지. 안 그래?
제가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이는 성격이라서 그런데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자기 직업에 충실하게.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고. 우리 때는 보리고개 때니까 열심히 배워서 여적까지 해서 나오는 거지. 요즘 시대 같으면 하다가 힘들다고 팽개치는 거지. 지금 젊은 사람들은 편하게 살라고 하거든. 이런 일이 대가 이어져 나가야 되는데, 대장간이라는 건 나이 먹은 사람들만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나이 먹으면 없어지는 거 아니야. 수원에 대장간이 많았어. 옛날에는 낫 만드는 공장도 있었고. 근데 지금은 다 없어졌잖아. 이제 수원에 남은 건 세 개.
늙음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왜 죽음에 대해서 설명해? 할 때까지 하는 거지.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죽는 건데 살아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살만큼 산거면 가는 거 가는 거지 뭘 무서워 무섭긴. 죽을 때 되면 죽는 거고 그렇지. 죽는걸 겁이 난다 하면 어떡해.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나이 먹으면 그만두고, 죽을 때가 왔다 하는 결론이고. 어떤 사람이고 다 그런 거지. 내 생전에 사나? 나도 나이 칠십에 힘에 부대끼고 그래서 누구 가르쳐서 남겨줄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구먼.
내가 해봐야 얼마나 해 먹겠어. 5-6년이면 해 먹는 건데, 그 정도만 해 먹으면 내가 그만두면 없어지는 거지. 대가 끊기는 거지.
아쉬워요. 이 모든 게 하나의 역사인데.
세월이 가는 게 조금 그렇지. 나이 먹으니까. 세월은 빠르고, 빨리 변하고, 일 년이 금방 가고.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 먹으니까 자꾸만 세월이 더 빠른 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으시다면?
지금 나이 70에 무슨 꿈이겠어요. 그냥 몸만 건강하고 고만둘 때까지 건강하게 하고 그런 거지. 이거 해봐야 내 몸이 건강하면 5-6년밖에 더 하겠어? 지금도 힘든데 뭘 더해. 옛날 같으면 70이면 노인 아니야? 요즘은 70이면 앤 데. 나중에 노인정 갈 생각도 없어. 노인정을 왜 가. 가면 어리다고 심부름이나 하지. 남한테 욕 안 먹고 손 안 벌리고 살면 되지.(웃음)
인터뷰를 마친 지 오래전인데도 가끔씩 생각나는 분이다. 굳은 얼굴로 일에 열중하고 계셔서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염려와는 달리 환한 웃음으로 음료를 건네시던 할아버지의 얼굴. 구수한 할아버지의 말투. 첫인상의 반전이 강렬해서 그런지 뜨거운 불에서 시작해서 날카롭고 차가운 쇠로 가득했던 대장간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할아버지의 팬이 되었으니, 팬심을 표현하러 종종 찾아뵈어야겠다. 요즘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면 할수록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애타는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기록하는데 더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