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웅, 77세, 수정이발관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름은 은호웅, 은은. 나라 은. 77세.
여기 미용실을 얼마나 운영하신 거예요?
50년. 이 자리에서는 2년 하고, 안에서 28년 하다가 이리로 이사 온 거야.
미용실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세요?
아침 7시에 나오고 저녁 7시에 퇴근하고 그래요. 대중업소는 보통 9시에 퇴근인데 우리는 좀 일찍 퇴근해요. 피곤하고 그래서.
이발소 이름이 '수정 이발소'예요. '수정 이발소'로 지으신 이유는?
물 수자에다가 바를 정자로 해서 바른 맑은 물로 해서. 개천이 있기 때문에. 수원천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계신가요?
단골손님은 1500명 정도 돼. 손님이야 다들 형제 같이 지내고 그러니까. 아우라 고도 부르고 한 형제같이 지내고 있어요.
이 의자에 진짜 수천 명이 앉아 있다 가셨겠어요. 손님들은 오시면 어떤 대화를 하세요?
이 의자만 해도 한 50년? 40년은 넘었을 거야. 주로 몸 건강하게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지금 보니까 효도업소라고 어르신 할인업소라고 지정됐는데, 어떻게 지정되신 거예요?
우리가 처음에 봉사 사업을 했는데, 구청에서 지정해줬어요.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고 있지. 처음에 65세 이상 노인분들한테 25프로를 할인하고 있고. 현재도 사업하고 있고, 노인 효도업소는 미용실 중에 여기 한 군데뿐이에요.
어르신들한테 무료로 이발하고 계신 거예요?
그걸 30년 동안 하고 있는 거야.
주변 분들한테 베풀고 봉사하시고 계시는 거네요.
물론 힘은 들어요. 봉사사업이라 그런지. 어르신들이라서 행동도 느리시고, 답답한 것도 많아요. 아무나 봉사활동 못해요. 해본 사람이나 하지. 한 번 주어진 사명이니까 나도 같이 늙어가는 처지고 서로 형제같이 지내면서 사업하는 거죠.
오랫동안 서서 일하시는 건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서서 그런 걸 해서 그런지 몰라도 오히려 앉아있는 게 불편해요. 서서 왔다 갔다 하는 거.
미용사로 일하시면서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그리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장발 시대.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머리를 다들 기르니까 장사가 안 됐지. 예전에는 머리카락을 가져갔어요. 머리가 뿌리 먹지 않는 거. 열매만 먹는 거, 그런 걸 호박 키우는데 뿌려놓으면 3년간 비료를 안 줘도 잘 된대요. 점차 시대가 변하니까 그런 것도 없어요. 그전에는 많이 수거해가지고 가져가서 가루비누로 주고 그랬거든요. 그건 20-30년 전 얘기고. (웃음)
이발소 운영 외에 관심 가는 것 있으세요?
새로운 취미야 많지 뭐. 등산하는 걸 좋아해요.
요즘 미용실 하시면서 가장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느끼시는 게 있다면?
달라진 거야 뭐 있겠어요? 세월이 변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받아들여야죠 뭐.
지금까지도 미용사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미용사로 산다는 건 어떠세요?
취미로 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건 없어요. 미용사가 완전 내 직업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미용사는 노후에 아주 좋아요. 편안해요 그냥. 나의 주어진 사명이고,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잘 배웠다고 생각해요. 딴 건 몰라도 이 계통으로 나는 성공한 사람이니까 나이 먹을 때까지 정년 없이 노후 대책으로 좋으니까 만족해요.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물론 생각이야 나요. 본인 나이 먹은 것도 알아요. 일하고 움직이면서 운동 삼아하는 거니까 나는 운동이다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건강하게.
동네에서 유일한 어르신 할인 미용실. 항상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갈 때마다 끊임없이 손님들이 오시는 바람에 인터뷰를 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했다. 인터뷰 중에도 손님분들이 끊임없이 오셔서 긴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해서 아쉽다. 2명의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미용실엔 단골손님들이 넘쳐난다. 가격도 저렴하고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고 하신다. 앞으로 더 많이 찾아주시길!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