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자, 67세, 거창 상회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건자. 67세.
언제부터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개업한 건 74년도. 다른 건물을 헐고 정리하는 바람에 이리로 왔죠. 고추하고 소금만 도매도 하고 그랬지.
직접 농사지은신 거예요?
지방에 있는 생산지에서 수집하다가 이렇게 하지.
고추 농사도 따로 지으세요?
지금도 일요일 가서 농사 지어요.
여기 보니까 거창 상회라고 지었는데,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우리 고향이 경상남도 거창이라서.(웃음)
가게 앞에 자전거도 있네요. 자전거로 배달도 다니세요?
내가 빨리빨리 다녀야 되니까. (웃음)
고추 상회에서는 평소에 어떤 일들을 하세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거에 맞춰서 하죠. 이 고추 말린 거 가지고 빻는 거죠. 몇 kg, 몇 kg씩 맞춰서 하는 거죠.
거창 상회가 다른 가게와 다르게 특별히 자랑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요? (웃음)
마늘 밭에서 직접 해서 하는 데가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지방에서 다 잘라가지고 나오거든요. 사실 그건 질이 안 좋아요. 밭에서 바로 수확한 건 나일론 망에 넣으면 금방 썩어요. 그대로 해서 말려가면서 잘라가면서 유일하게 그렇게 하는 곳이 여기예요. 나는 망 넣어서 하는 게 싫고 여기서 큰 것도 고를 수 있고, 여기 오면 그걸 골라갈 수 있으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만 오는 데가 이런 데야.
품목이 대부분 고추여서 매우시겠어요.(웃음)
맵죠. 오래 하면 면역이 생겨서 안 매워요.(웃음) 처음엔 엄청났죠. 눈물, 콧물.
김장철에 고추를 많이 사가시거나 빻으러 많이들 오시겠네요. 고춧가루 크기도 조절할 수 있는 거예요?
크기를 다 다르게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소비자가 원하는 걸 하는 거야. 씨를 없앨 건가 할 건가. 음식 하는 요리에 따라 달라요.
어느 지역 고추인지를 아세요?
응. 이걸 언제 수확한 고추 인지도 알고, 아무리 햇볕에 말린 상품이라고 해도 우린 다 알지.
요새는 제일 맛있는 고추는 어느 지역 고추예요?
종자 은행도 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이 그런 종자를 사다가 모종을 기르잖아. 하우스에서 키운 종자를 사다가 심는 거야. 충청도 어디 고추는 어떻게 생겼고 그런 게 있는데, 기르기만 거기서 키웠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많이 퇴색됐죠. 어느 지역의 고추, 충청도 어디 고추. 이런 건 많이 퇴색이 돼서 그렇지. 충청도에서 사 오면 충청도 것이 되듯이 뒤죽박죽 됐어. 그래도 지역마다 특색은 있어요. 이건 보니까 어디꺼다. 이건 어디꺼구나. 알죠. 고추 보면 어디 건 줄 알아요. 이건 몇 번째로 딴것까지도 알아요.
고추에 대해서는 전문가시네요. (웃음) 요즘 장사는 어떠세요?
옛날이랑 달라. 직거래도 많이 하고 대기업들이 요식업을 많이 해요. 주로 큰 대기업들이 하니까 그 사람들이 장악하기 전에 할 때는 경기대, 아주대까지 다 납품을 했죠. 교도소까지. 이젠 대기업한테 우린 당할 수가 없잖아요. 시설, 규모 모든 게. 어떻게 되겠어요? 다 따지고 들면 당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할 수 없지. 그래도 간간히 손님들 중에 보다가 이렇게 오시는 분들 많죠. 할머니 때 오시던 분들이 영양사가 돼서 오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유지하지요.
거창 상회 뒤로도 청과물 시장이 있네요. 이름이 정확히 뭐예요?
종로 시장. 매향동 시장이라고도 하고 종로시장이라고도 해요. 왜 종로시장이냐면, 옆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요. 광장 자리. 터미널이 있었지. 그걸로 이 주위에 용인, 수지, 오산, 병점 이런데서 다 야채 농사를 지어서 여기 갖고 와서 팔고 여기서 생활용품 사서 가고. 새벽 2시부터 문 열면 종일 사람들이 있죠. 밤 열 시까지도 사람이 이렇게 문만 열어놓으면 장사됐어요. 여기 역사가 깊잖아요. 여기 시장이 그래요. 야채 도매시장이 엄청나지요. 엄청나지요.
시장이 제일 번성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장의 변화를 보신 거네요?
말 그대로 도매니까. 여기가 도매시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시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때 당시 심부름도 하고 리어카 장사도 하는 사람들이 물려받은 거니까. 지금은 여기가 많이 죽었지. 나중에 시장 보고 싶으면 아침 6시 반부터 7시. 여기 뒤편은 더 빨리 여니까 그때 와봐요.
시장의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물론 마트 같은 것도 좋지만, 나와서 흥정하고. 사람 냄새나잖아요. 이웃 사람들하고 음식 같이 나눠 먹고 그래서 지금도 좋아요.
시장 부근이 개발되고 있어요. 개발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동전의 양면인데, 좋은 점 나쁜 점 다 있거든요. 노인들 문화생활 즐기기는 괜찮고, 문화재 복원한다는 차원에서는 좀 그래요. 얼마나 이용할지 안 할지는 나중의 일이고 기대는 하지요. 옛것도 좋은데, 사실은 부정적인 것도 많아요.
시장 친구분들도 많으시겠어요.
예. 나가면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지. 딸들이 엄마는 왜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냐고 그래요. (웃음) 딱히 나이 들어서 어디 나가서 뭐 할 수도 없고. 나가봐야 경비 들고. 현상 유지하고 있는 거야. 자식들한테 돈 안 벌리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분들이 그만두시면, 시장도 점점 더 사라지겠네요.
그렇죠 비죠. 젊은 사람들이 요즘은 이런 궂은일을 할 수 없어요. 왜 할 수가 없냐면 우리 세대만 해도 산업 사회 때 시골이 소득이 많았지. 농경사회지 그때가. 그때는 여기 오면 직업이겠거니 하고 하는 거야. 매워도 참아야 하고, 밤새고도 애 업고 일하고. 지금 세대는 아무도 그렇게 안 하지요. 어림도 없죠. 궂은일, 힘든 일 피하려고 하니까.
일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요. 일의 가치, 노동에 대해서요.
일을 하면서 노는 거하고 일을 안 하면서 노는 거하고는 천지차이예요. 장사 오래 하면서 관둔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서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을 하면서 움직이는 거랑은 가게 문을 열어놓고, 바둑 하고 장기 두는 건 천지차이예요. 관광을 해도 내가 미리 해놓고, 가서도 내가 이렇게 해야 되니까. 부지런하게 하는 거니까. 나태해지지 않는 게 있어요. 가게를 하면. 내가 일거리가 있으니까 가서 일을 해야 되고, 사람들 오니까 또 해야 되고 그런 게 있어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 근데 하다가 관둔 사람들을 보면 다 후회해요. 왜 그러냐면 장사를 하다가 경비를 간 사람도 있고 그렇거든요. 자영업이 좋다고. 자유가 있으니까. 모이면 밥 먹으래도 못 나오잖아요. 그 사람들은 얽매여가지고. 그래서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그래요. 놀아도 여기 와서 놀면 집에서 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집에 있으면 편하게 옷 입고 그렇지. 그죠? 딱히 또 집에 있으면 책을 펼쳐볼 수도 없고 집에서도 일이 많아. 여기는 일이 있으면서 노는 거니까.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살아간다. 산다.
산다는 게 희망이지.
뜬금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잘 살았구나. 제대로 된 삶을 살았지.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데, 재산을 많이 모아서 자녀들이 잘 되고 명예와 부를 가지고 늘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네들이야 이 정도 삶을 살았으면 자녀들은 잘해서 다 맞벌이해서 살고 있고 나 역시도 내가 벌어 내가 쓰면서 애들 용돈 안 줘도 기 펴고 살고 그러니까. 저녁이면 취미생활도 좀 할 수 있고. 사람 욕심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애들 키우고 바쁘고 할 때는 학교에 학부형 수업 참관할 때는 짜증 날 때도 있지. 바쁘지 않은 사람들 여유롭게 와서 할 땐 부럽고 그랬지. 후회스럽진 않지만, 시간이 쪼달리니까 저 사람들처럼 여유롭게 와서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죠. 그땐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았지만, 지금 보니까 다들 똑같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거 같아요. 그전에 내가 한 50살까지는 남이 돈 많이 벌면 부럽고 살림살이 좋은 거 사면 그랬는데, 다 비우고 만족하고 사니까 그저 그렇다고. 욕심이 없어져요. 욕심이 없으니까 남보다 내가 밥값을 먼저 내는 게 좋고. 마음을 이래 비우니까. 난 여태 약을 안 먹어요. 봉사로 베푸니까 당뇨도 없지, 혈압도 없지, 머리도 염색 안 하지. 하다 보면 괜찮아요. 진짜 그래요. 놀라요 사람들이.
노인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몇 살부터 노인일까요?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은?
순리. 긍정적으로 하죠. 순리로 살고 있지. 60부터 노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노인 기준을 어떻게 보냐 하면 거동이 불편하고, 정신도 그렇고 하면 노인이라고 생각해. 나이가 많아도 말이 통하고 이러면 노인이 아니고. 아들 며느리가 그래요. 딴 엄마들 생각보다 젊게 산다고. 생각도 그렇고. 하늘이 두쪽 나도 신문을 보잖아. 스포츠 까지. 젊은 애들하고 대화할 수 있잖아. 딸도 놀라. 그것도 아냐고 그래. 그렇게 살면 좋잖아.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죽음이요? 받아들이는 거지. 나는 어떻게 해서 더 살아야지 이런 건 없어요. 주어진대로 운명이고. 큰 사건, 사고 없으면 그냥 하다가 자식들 폐 안 끼치고 손 안 벌리고. 그렇지 뭐. 내가 어떻게 살기 위해서 운동한다. 그렇게 안 살아요 진짜로.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으시다면?
있죠. 소망은 자식들이 아무 일 없이 이대로 잘 나가 주는 거. 그거고. 꿈은 진짜 일없이 이대로 하다가 언젠가는 관두는 거. 진짜 이렇게 못 움직일 때 관두는 거.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관두는 거. 그게 희망이고, 꿈이고. 그렇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목.
산다는 게 희망이지. 제대로 된 삶을 살았더라고.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