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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08. 2024

매화에 붙여

제주에서




여행에서 큰 욕심을 버린지 오래다.

어떤 거대한 것 장엄한 것 숭고를 만나면  더할 수 없이 기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떠남으로 마음은 설레고

작은 것들에 반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것들의 시작은 나. 

그것도 나의 마음 나의 감정 나의 시선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삶이  내 여행의 마에스트로 라는 것을

그러니 작은 것들에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이 장착된 것을

기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푸름 속에 푸름처럼 수많은 색의 갈래가 또 있을까? 

푸른 바다는 푸른 색이 아니다고 어느 화가가 그랬던가, 

푸른색은 어느 색이라도 푸름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고

운전을 하며 흘깃거리다가 결국 나는 차를 멈추고 말았다

이렇게 고요한 바다는 처음이었다.

시실 바다는 모든 물 중에 가장 왕성한 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물이 깊은 고요 속에 잠겨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늘이 잿빛이라선지 바다도 하늘의 잿빛을 품고 있었다. 푸르른 잿빛 

제주의 고요한 바다는 좀 생경했다. 

크고 작은 하얀 이빨을 사람의 내면처럼 품고 있던 그 아니던가  

일월 말에 육지 어디에서 매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홍매는 매화중 좀 되바라져서(고목 홍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나) 

제주의 일월에 매화라니, 물론 설중매도 아니고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전기의 매화초옥도와는 견줄수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어딘가, 

이 겨울 냄새 짙은 한겨울의 매화라니,

여행을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우연의 선물 아닌가. 

서귀포 시공원에서 2024년 1월 30일  첫 매화상견이 이루어졌다. 

청년 매화목은 그것도  밭을 이루고 서있는 모습은 고매의 품격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면 가까이 깊이, 다가서는 것, 응시할  한 송이를 찾는 것, 

 



난초의 향기를 유향(幽香), 

모란의 향기를 이향(異香),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는데

옅으면서도 깊고 아득하면서도 유려한 향기를 귀로 듣는다 하여 

그들의 은일한 향기를 일컬어 문향(聞香)이라고도 한다. 

가까이 다가서거나 찾아내는 사람에게만 다가서는 향기, 

향기를 내뿜되 짙게  내뿜지 않아서 

공기의 결속에서 찾아내는 향기라고나 할까

백매도 꽃받침이 붉은 게 있 고 녹색이 있다. 

이상하게 붉은 꽃잎보다 녹색 받침이 더 매화스럽다.

그래선지 다산은 그를 녹악매라 이름하고 좋아했다고 한다. 

사실 일찍 매화를 만나면 동네서 피는 매화에 대해 좀 무심해진다. 

무심은 사물에 대해 객관성과 거리를 지니게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문학의 향기는 매화 향기와 흡사하다. 




제주는 참으로 문학적인 섬이다.

바다가 섬이 돌이 나무들이 작은 풀들이 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문학의 향기가 어른거린다. 

이생진 시비 공원이나 

서귀포의 시공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느 시인의 찻집이거나

사소한 책방이라는 이름 때문이지도 모른다

동두렷한 곳에 위치해 있는 서귀포의 기당 미술관 때문일수도 있다. 

그 미술관에 제주의 바람, 제주의 색을 그리던 화가 

말과 고독한 화가의 지팡이를 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오름 사진만을 찍어왔던 김영갑 사진 작가의 애잔함이 

오름마다 어른거려서일까. 

문학의 향기라니~ 

좀 고답적이거나 좀 유치하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문학의 향기는 얼마나 지대하고 거룩하게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나를 이끌어 왔던가.

매화를 보며 매화의 향기를 내게 기록하는 것도 결국은 문학의 그늘 아닌가. 

나의 가장 멋진 고매 문학. 

아니 문학은 내 평생 만나기 아려운 가장 멋진 자태의 매화 아닌가. 

산림처사 임포는 되지 못할지라도

한그루 매화나무라도 키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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