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마케팅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말.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것. 가난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가난한 사람을 소품처럼 사용해 후원을 끌어내는 방법. 바로 빈곤 포르노다. 세상은 캄보디아 아이를 안고 있는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보고 그게 연출 이내 아니게 하며 진위를 따졌지만 난 내 일의 목적에 대한 여부를 따져보는 시간이 됐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후원 업무 담당자인 나는 연말이 될수록 한숨이 깊어진다. 곧 드러날 후원 금품의 총계. 작년과 비교해 보면서 숫자 앞에 마이너스 기호를 먼저 입력하고 시작한다. 이 순간만큼은 마이너스 기호는 바늘이 된다. 내 가슴을 꼭꼭 찌른다. 코로나19 여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라며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내 능력을 꾸짖는다.
사회복지기관에서는 후원 금품이 중요하다. 십 원도 틀리지 않게 책정되어 배부되는 정부 보조금으로는 여러 사업을 수행할 수 없다. 그저 의식주 해결과 최소한의 사업만 할 수 있다. 다양한 사업을 위해서 더 많은 사업비가 필요한데 그 재원을 후원 금품으로 채워가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후원금은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주시는 정기 후원자와 종종 일시금으로 보내주시는 비정기 후원자가 있다. 후원 금액은 천 원부터 몇백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정기 후원자는 대부분 개인이며 비정기 후원자는 단체나 기업이 많다. 후원품 역시 개인이나 단체, 기업 등에서 보내주고 있으며 생필품, 가전제품, 식품, 의류 등 다양하다. 쓸만한 중고 물품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금액이 얼마가 되든 물품이 새것은 헌 거든 간에 기억해 주고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수십 년 후원을 이어오는 분들도 계시고 이제 막 후원을 시작한 분들도 계시고 중단된 후원을 다시 이어가는 분들도 계신다.
시설에 후원 금품이 줄어드는 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기부금 추이를 보면 해마다 늘고 있지만 기부처의 다양화로 기부금은 분산되고 있다. 한때는 기부하면 복지시설이나 모금 전문기관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에는 시민단체, 문화단체, 해외 구호 등 기부할 곳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분야에 기부한다분야에 기부를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단체들이 재능을 펼치고,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며 지원해 주는 형태가 된 것이다. 물론 자선 단체의 기부금은 매년 일등이지만 대부분 모금 전문기관으로 쏠리고 있다. 그러니 해마다 기부금은 늘어나는 추세여도 지역사회 내 복지시설들은 애가 탄다. 기부금의 증가가 시설의 후원금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모금 전문기관으로 집중된 기부금은 복지시설의 사업비로, 입주인의 결연 후원금으로 나눠지기도 하지만 기관 입장에서는 순수한 후원금이라기보다는 재분배되는 사업비일 뿐이다.
지역사회 복지시설도 기부금 모집을 통해 자생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우선, 시설의 주 업무는 입주인의 보호와 일상생활 지원이라 업무의 에너지가 내부로 집중되는 구조다. 따라서 홍보나 모금 활동에 필요한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다. 이는 전통적인 모금 활동은 물론 빠르게 변해가는 기부문화나 콘텐츠를 활용한 모금 방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직원들이 지인에게 요청하거나 봉사자나 방문자에게 두루뭉술한 말로 후원을 유도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생각해 낸 전략은 입주인의 어려운 사정과 불쌍한 모습, 차별당했던 경험을 최대한 부각해 봉사자나, 방문자, 지역주민들에게 넋두리하는 것,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한 연민으로 주머니를 열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기부금을 모으고 후원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게 담당자의 능력이고 역할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허탈했다. 단순히 기관의 후원자 수와 통장 잔고를 늘리기 위해 하는 행동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았다. 그저 돈이 필요해서, 개인 실적을 위해서 입주인의 삶과 그들의 보금자리를 수단으로 삼는 행위나 장애와 가난을 무기 삼아 기부를 끌어낸다면 이것도 빈곤 포르노가 아닐지.
보다 사회 사업가다운 기부금 모집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소속되어 있는 시설의 꿈과 목표를 알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행위, 그 뜻을 공감하는 사람을 모으는 행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행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행위. 이러한 행위들은 지갑보다는 마음을 열게 하는 행위지만 사실은 직접적인 요청이 없이도 기부자를 모으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정교한 마케팅이나 감정을 뒤흔드는 문구는 그다음의 일이다. 그리고 그 대상들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지역 주민이어야 한다. 이들은 시설 입주인이 고깃집에서 외식하고, 밥값 정도의 커피를 마시고, 계절별로 새 옷을 사고, 여행을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더 필요한 것을 채워준다. 부족해서, 없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풍족하면 좋을 것 같아서, 더 자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더 자주 커피를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더 많은 옷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더 자주 여행을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있는 살림에 덤을 보태는 사람들이다. 애써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습을 봐도 손을 내밀고, 초라한 모습이 아닌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봐도 쌀을 건네고, 직원들의 노고에 따뜻한 한마디를 먼저 건네는 그런 사람들이 지역주민이다. 그리고 이런 연결들이 무수히 이어질 때 우리는 기적 같은 일을 만나기도 한다.
빈곤한 척, 불쌍한 척하지 않고 여느 사람처럼 살아도, 고립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도, 사회사업가는 과장 없이 본업에만 충실해도, 사람들은 동정 아닌 연대의 마음으로 먼저 말을 건넬 것이다. ‘후원하고 싶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