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rang Jan 09. 2024

위로

66개월


어김없이 퇴근길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끝났어.”

말끝 음을 떨어트리며 말하자 아내 대신 주아가 대답했다.

“아빠? 어디야?”

“주아야? 아빠 일 끝나고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아빠, 언제 와?”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빨리 갈게”

“근데 아빠, 힘들어 보인다.”


순간 숨이 멎었다. 맞다. 힘든 하루였다. 목소리만 듣고도 내 기분을 알아준 주아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안아주고 싶었다. 안기고도 싶었다. 오늘은 창고 정리를 하느라 힘을 많이 썼다. 사실 몸도 몸이지만 두어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이 많은 연말 탓도 있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두드러기가 생긴 마냥 자꾸 거슬리는 뭔가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긁어 가려움만 해결하는 일시적인 위안도 만성이 다 된 듯하다. 얼른 그 뿌리를 찾아서 뽑든, 옮겨 심든 해야 하는데 그 뿌리를 못 찾겠다. 나도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누구에게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 그렇다고 애써 괜찮은 척도 안되는 상황.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히 지내려 해도 표정이나 말투, 행동엔 잔물결이 인다. 무슨 일 있냐는 질문엔 없다며 요동 없는 대답을 흘려보낸다. 평온해 보이려는 내면의 물 갈퀴질에 지쳐가던 중 힘들어 보인다는 한마디에 물밑으로 빠지듯 주저앉았다. 어차피 시간으로 담금질하면 괜찮아질 거였지만 오늘은 위로받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힘이 생겼다. 여섯 살 아이의 한마디에.   

  

주아에게 오늘 이야기를 꼭 해줄 테다. 힘들어 보인다는 한마디에 아빠가 너무 행복했다고. 언제나 슈퍼맨이어야 할 아빠도 힘이 빠질 때가 있다고. 요즘이 그랬다고. 하지만 얼떨결에 해준 너의 위로 덕분에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런 힘이 있다고. 고마워 라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힘들어 보인다고, 슬퍼 보이면 슬퍼 보인다고, 좋아 보이면 좋아 보인다며 기분을 알아채는 아이. 그러다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고 기뻐해 주며 마음을 보듬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빤 그러지 못했지만 주아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 돕겠다고, 넌 그랬었다고, 넌 그런 아이라고, 매 순간 응원할 것이다. 


“주아야,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초가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