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rang Oct 05. 2023

초가을

63개월 15일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면 할아버지 댁을 찾는다. 한동네에 사시다 이사 간 지 3년 정도 되셨다.  지금 살고 계신 지역도 오래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재개발이 되면서 몇 번의 이사를 하시다 개발이 끝나고 원주민으로 자격으로 새 아파트에 입주하셨다.


주아 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단지 사이사이로 킥보드를 타는 일, 놀이터를 발견하면 킥보드를 팽개치고 노는 일,  다시 킥보드를 타고 다른 놀이터로 이동해 또다시 노는 일이다.  놀이터가 없고 차가 많이 다니는 우리 동네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만 오면 아주 열심이다.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일요일 아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 가족은 앞산으로 산책하러 간다.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산이다. 산의 매력이야 수 가지를 늘어 놀 수 있지만 이 산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그 매력은 바로 이맘때, 초가을에 절정을 이룬다. 바로 산을 덮고 있는 밤나무다.


밤의 주인은 다람쥐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9월 초부터 가방을 둘러메고 밥을 주으러 다니신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깜짝 놀란다. 숲 안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거나 갑자기 숲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가방을 둘러멘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모두 잃어버린 자식 찾듯 땅만 보며, 낙엽을 휘 휘 걷어내며 집 나간 밤을 찾는다.  할아버지 얘기로는 새벽녘에도 산에 사람이 많다고 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일요일 아침, 우리도 늦깎이 밤 찾기에 나섰다. 할머니가 앞장서고 우리 부부와 주아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제일 뒤에 서서 걸었다. 이미 입을 쩍 벌린 밤송이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수백, 수천 가지의 표정을 지으며 널브러져 있다. 이 많은 밤을 도대체 누가 다 가져갔을까? 우리는 부러움과 아쉬움과 투정을 날숨에 섞어 뱉으며 걸었다. 그래도 종종 밤이 보였다. 한 알, 두 알씩 주머니에 넣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재개발로 흩어졌다가 공사가 끝나자 다시 동네로 이사 온 옛 이웃들을 마주친다. 그럴 땐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이날도 산길에서 옛 동네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분들도 우리처럼 운동 삼아 나온 김에 밤을 줍고 계셨다. 건강 걱정부터 요즘 안부, 그리고 산책로가 좋다 느니 하는 작은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더니 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밤 좀 주웠냐는 말에 손바닥 위로 두어 알 보이며 이것밖에 못 주웠다며 우리와 똑같이 밤의 행방을 궁금해하신다. 대화 도중 갑자기 할머니가 바닥에서 밤을 발견했다. 밤을 주워 보이며 앞서가던 옛 동네 이웃분들에게 말했다.


“ 앞서가면서도 이 밤을 못 봤어요? 이렇게 큰데”.

그러자 이웃분들이 웃으시면서 대답했다.

“각자 자기 것이 따로 있어. 뒤돌아서면 꼭 누가 줍는다니까”.

할머니는 맞는다고, 떠난 자리에서 꼭 누가 줍는다며 맞장구치시고는 호주머니에 밤을 챙기셨다. 할머니들의 대화를 엿듣던 주아는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밤에 이름을 쓰면 사람들이 안 가져가겠네.”


네 밤, 내 밤거리며 다투지 않고 내 발밑에 있어도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할머니들의 초월적인 대화가 이상하게 들렸나 보다. 하나라도 더 줍고 싶은 마음에 내놓은 답에 아내와 난 그냥 웃었다.      


내 것이 아니면 네 것이고, 네 것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이겠지, 욕심낼 필요 없이 그저 각자의 것은 따로 있다며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인생이라 말하는 할머니들. 그와 반대로 더 많이 갖고 싶고, 내 손에 쥔 건 절대 놓치지 않는 게 행복이라 생각하는 주아.  이제껏 살아온 어른과 이제 막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의 대화에 생각들이 여문다.


갈색빛 밤송이 껍질이 발에 챘다. 벌려진 속을 들여다보며 내 것이라면 움켜쥐고 쉬이 내어주지 않는 옹졸한 사람이 되지 말고 밤처럼 때가 되면 뾰족하고 딱딱한 껍질을 열어 다람쥐에게,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그런 밤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주아도 아마 인생의 초가을쯤 되면 그런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봄날의 꽃샘추위도 한여름의 무더위도 잘 이겨내야 할 텐데.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줘야 할지. 다시 또 생각들이 깊어져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