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개월
어김없이 퇴근길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끝났어.”
말끝 음을 떨어트리며 말하자 아내 대신 주아가 대답했다.
“아빠? 어디야?”
“주아야? 아빠 일 끝나고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아빠, 언제 와?”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빨리 갈게”
“근데 아빠, 힘들어 보인다.”
순간 숨이 멎었다. 맞다. 힘든 하루였다. 목소리만 듣고도 내 기분을 알아준 주아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안아주고 싶었다. 안기고도 싶었다. 오늘은 창고 정리를 하느라 힘을 많이 썼다. 사실 몸도 몸이지만 두어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이 많은 연말 탓도 있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두드러기가 생긴 마냥 자꾸 거슬리는 뭔가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긁어 가려움만 해결하는 일시적인 위안도 만성이 다 된 듯하다. 얼른 그 뿌리를 찾아서 뽑든, 옮겨 심든 해야 하는데 그 뿌리를 못 찾겠다. 나도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누구에게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 그렇다고 애써 괜찮은 척도 안되는 상황.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히 지내려 해도 표정이나 말투, 행동엔 잔물결이 인다. 무슨 일 있냐는 질문엔 없다며 요동 없는 대답을 흘려보낸다. 평온해 보이려는 내면의 물 갈퀴질에 지쳐가던 중 힘들어 보인다는 한마디에 물밑으로 빠지듯 주저앉았다. 어차피 시간으로 담금질하면 괜찮아질 거였지만 오늘은 위로받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힘이 생겼다. 여섯 살 아이의 한마디에.
주아에게 오늘 이야기를 꼭 해줄 테다. 힘들어 보인다는 한마디에 아빠가 너무 행복했다고. 언제나 슈퍼맨이어야 할 아빠도 힘이 빠질 때가 있다고. 요즘이 그랬다고. 하지만 얼떨결에 해준 너의 위로 덕분에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런 힘이 있다고. 고마워 라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힘들어 보인다고, 슬퍼 보이면 슬퍼 보인다고, 좋아 보이면 좋아 보인다며 기분을 알아채는 아이. 그러다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고 기뻐해 주며 마음을 보듬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빤 그러지 못했지만 주아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 돕겠다고, 넌 그랬었다고, 넌 그런 아이라고, 매 순간 응원할 것이다.
“주아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