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춤
정직과 성실의 가치는 사라진 사회
1. 유리 천장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빌딩 숲 사이에 자리 잡은 대기업 '하늘전자'는 겉으로는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 문화를 자랑했다. 회사 로비에는 "정직과 성실이 우리의 가치를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문구는 단지 장식일 뿐이었다.
김도현, 35세의 평범한 대리,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왔다.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상사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그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늘 같은 풍경이었다. 승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실적보다 '줄'을 잘 선 사람들이었다.
"도현 대리님, 이번 프로젝트 보고서는 정말 완벽합니다!" 후배인 지수의 칭찬에도 도현은 씁쓸히 미소 지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해도, 그의 이름은 상사의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2. 그림자 속의 사람들
반면, 같은 부서의 박민수 과장은 달랐다. 그는 회사 내에서 '그림자'라고 불렸다. 민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업무 능력은 평균 이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다루는 데 천재적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상사의 농담에 가장 크게 웃었고, 중요한 행사에서는 항상 상사 옆자리를 차지했다.
민수는 도현에게 종종 말했다.
"도현 대리, 회사 생활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눈치와 타이밍이 중요하지."
하지만 도현은 그런 민수의 태도가 불편했다. 그는 정직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민수는 부장의 추천으로 빠르게 승진했고, 도현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3. 부조리의 정점
어느 날, 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도현은 밤낮없이 일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발표회 당일, 발표자는 민수가 되었다. 도현이 준비한 모든 자료와 아이디어는 민수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박민수 과장님, 이번 프로젝트 정말 훌륭했습니다!"
사장님의 칭찬에 민수는 겸손한 척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승리감이 가득했다.
회의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도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사 내에서 '충성'과 '줄 서기'가 실력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현실을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4. 변화의 씨앗
몇 달 후, 도현은 회사를 떠났다. 그는 더 이상 부조리에 눈감고 살 수 없었다. 퇴사 후 그는 작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의 회사는 정직과 성실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시간이 흘러 하늘전자는 내부 비리와 부패로 인해 큰 위기를 맞았다. 반면 도현의 스타트업은 점차 성장하며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민수가 도현에게 연락을 해왔다.
"도현 씨, 혹시 우리 회사와 협력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도현은 잠시 고민했지만 단호히 말했다.
"정직과 성실이 없는 곳과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5. 끝맺음
부조리는 때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낸다.
도현은 깨달았다. 세상이 부조리하더라도 자신만큼은 그 속에 물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결국 자신을 빛나게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