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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mentum

논문과 짝사랑

기약 없는 마음

by Bird

글을 쓰는 일은 짝사랑과 닮았다.

짝사랑은 혼자서 마음 졸이며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 사람이 나를 봤을까, 말 한마디라도 걸어볼까, 혹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상대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냈는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논문도 그렇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이게 맞나?” 하는 불안이 스며든다. 수많은 논문을 읽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결론을 짓는 과정에서 마음은 몇 번이고 흔들린다.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하지만 내 논문을 읽을 미래의 누군가는,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모를 것이다.


짝사랑이 힘든 이유는, 마음을 쏟아부어도 상대가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심사위원 한 마디에 모든 게 뒤집힐 수도 있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을까?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결국 고백을 해야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논문도 결국 써내야 끝이 난다.


설렘 없는 짝사랑은 없듯이, 고민 없는 연구도 없다. 지금은 단순히 힘든 시기일 수도 있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하며 웃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도 그냥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논문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언젠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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