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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현 Nov 29. 2017

설거지봇

feat. 김장날이 다가온다

시어머니가 부지런히 저녁준비를 하시면,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고있는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시동생과 달리 나는 눈치를 보며 거실에 앉았다가 주방에 들어갔다 하며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다른일을 하고 계실때도 마찬가지다. 넉살좋고 행동이 빠릿빠릿하다면 모를까, 원래 느린 성격에다가 내 집이 아니라 어색한 상황에서 쭈뼛쭈뼛 거리다보면 괜히 방해만 되는 기분이다. 


결혼 4년차,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불편하다. 어머님이 저녁준비 하실때는 그냥 편안하게 나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부엌에 둘이 서있기는 좀 좁기도하고 동선에 방해도 되기때문에 어머님께서 내가 돕는것 보다 쉬는것이 더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항상 설거지는 내담당이다. 아, 상차림 도와주는것도 내담당.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설거지를 시킨다는것에 그 어떤 악의도 없다는 것을 잘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엄마'로서의 완벽함을 기대하는것도,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의의 희망 혹은 욕심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때로는 '무지'도 폭력이 된다. 며느리는 내 아들의 소유물이 아니고, 내 아들의 부하도 아니다. 며느리에게 설거지를 시킬 수 있다는것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에서 더 나아가 내 아들보다 '아랫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평등하게 이루어진 결혼이지만, 시부모님의 눈에는 내 아들이 먹여살리는, 내 아들을 내조하고 내 아들의 말을 잘들어야만 하는 아랫사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릴 수 있고, 부리지 않는다면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우리나라 모든 남편들이 주장하는 '우리엄만 안그래'의 그 '엄마'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도 항상 본인은 '좋은 시어머니'라는 것을 본인의 시어머니와 비교해서 드러내신다. 당신은 시집살이가 혹독하셨다는데 '나는 절대 며느리 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만큼 아랫사람을 부리지 않던가.


그런데 사실은 며느리를 설거지 시켜도 당연한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며느리에게 설거지를 안시키면 좋은 시어미니라는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다. 누군가 열심히 밥상을 차리면 맛있게 먹고 또 다른 누군가가 뒷정리를 서로 도와서 하면 되는것이다. 그 누군가가 꼭 시어머니와 며느리여야만 하는 것이 참....


아, 이번주는 김장하러 가야한다. 작년에 고무장갑을 하나 들고갔었는데, 어머님이 내꺼를 하나 사두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져온것은 남편 주자고 했더니, 멋쩍은 웃음을 보이시던 시어머님이 떠오른다. 아니, 김치는 나만먹냐고요. 왜 며느리만 도와야하나요. 어머님은 며느리오니 김장하기 편해지셔서 너무 좋단다. 그럼 그동안 김장날이면 놀러가던 작은아들한테 도와달라고 하실 생각은 왜 못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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