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다이어트 강박증
결혼날짜가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결혼 전 미리 살았던 것이 실수였는지, 우리는 둘 다 겨우 5개월 살면서 5kg이 쪘다. 즉 1개월에 1kg이 찐 셈이다. 그래서 결국 둘 다 다이어트에 돌입했는데, 오랜만에 살을 빼니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대체로 어렸을 때부터 마른 편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몸무게 역시 적게 나가 왜소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이 나에겐 꽤나 콤플렉스였는데, 어떤 사람이든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고 왜소한 여자아이가 오히려 센 성격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곤 했는데, 이 역시 일부러 센 성격인 것처럼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다 내 생에 첫 번째로 살이 쩠는데, 바로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서였다.
남들에겐 난 과자 좋아하지 않는다고, 빵을 소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저런 말을 하면 "역시 마른 애들은 다 이유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사실 나는 과자를 좋아했고 빵 역시 좋아했다. 그저 남들 앞이라 참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남들 시선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프랑스에 가니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었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자취를 한다는 건 1인분 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점이 나에겐 너무 어려워서 집에서 음식을 할 때마다 2~3인분씩 조리하곤 했다. 이로 인해 나는 프랑스에 있던 고작 5개월 만에 10kg나 쩌버렸다.
교환학생이 끝난 뒤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살이 쩠냐"라고 물었다. 이 말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끊이질 않았다. 마르고 꽤나 예쁜 편이었던 나는 반년 만에 피부도 새까매지고 살이 쪄서 돌아오니,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너 왜 이렇게 됐니"라는 물음표를 던지곤 했다. 프랑스에 있었던 반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부모 아래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돌아다닐 수 있었고 내가 먹고 싶은 데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밤에 라면을 먹어도 엄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한국에서의 나에겐 곧 독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해외로 도망쳤다.
탄자니아에서의 6개월 역시 나에겐 자유로움 투성이었다. 당시 사무실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사무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탄자니아의 아주 시골에 떨어진 나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매일 혼자 피자 한 판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다시는 살찌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것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나는 점점 더 살이 쩌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을 만나자마자 아빠는 "왜 이렇게 통통해졌냐"라고 물었다. 내 눈치를 보던 엄마는 바로 아빠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도록 말렸지만, 나는 이미 그 말을 들은 뒤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들은 탄자니아에서의 나의 경험, 성장 혹은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궁금해하지 않고 왜 살이 쩠는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어른들이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내가 살찐 것으로 이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주는데, 학교로 돌아가면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이 얼마나 나에게 더 상처를 줄지 무서웠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나는 쩠던 10kg를 빼고 거기에 더해 2kg가 더 빠졌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살이 쩠다고 할까 봐,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물을까 봐 무서워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하루에 한 끼씩 먹고 운동만 하며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니 사람들이 하는 말, "왜 이렇게 말랐어?"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내가 살을 어떻게 뺐던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이 쩠는지, 말랐는지 그 상태만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준 상처는 나에게 계속 남아서 나는 그때 이후로 5년이 넘게 42kg로 살아왔고 그동안 저혈압으로 응급실을 수 차례 들락날락했으며 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남들이 원하는 그런 몸이 되었지만 내 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게나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나는 행복하니 살이 쪘다. 프랑스에 있을 때와 같았다. 남편과 함께 지내며 재미있는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살이 쪘다. 프랑스에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뱃살이 잡히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 시선에 맞춰서 살거니?"
사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살자니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줄 말이 신경 쓰이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자니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고 답답했다. 아마 우리나라의 많은 여자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 것이다. 수많은 여자들이 머릿속에 다이어트 강박증을 달고 살 것이다. 유튜브로 걸그룹 안무 영상을 보며 '난 왜 저렇게 마르지 못한 거지'라고 생각하고 헬스장을 다니며, 필라테스를 하며 자기 관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이런 삶이 나의 정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다이어트 강박증은 수많은 말들이 만들었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이런 나를 잘 아니까, 내가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려 힘들어하는 것을 스스로 잘 아니까,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