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사랑 그리고 꿈은 모두 하나임을, <라라랜드>
브런치에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거나 인상 깊었던 영화는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다 작년 12월, <라라랜드>를 만났다.
영화제를 통해 알게 된 동생이 있었는데, 9월부터 인스타그램에 계속해서 <라라랜드> 소식을 올리곤 했다. "올 겨울 가장 기대되는 영화"라며 "꼭 보겠다"고 장담을 하고 있었다. 영화 캐스팅이나 크랭크업 소식을 빨리 접하는 편이지만, 우습게도 <라라랜드>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나옴에도 최근에는 다른 배우의 덕질을 하고 있었고, 남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데미안 차젤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가 나에게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라라랜드>가 개봉했고, 그 동생이 떠올라 관람했고, 이 영화는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영화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내게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이상 보는 일은 드물다. 아마 해리포터의 마지막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유일할 것이다. 그 영화는 개봉일로부터 3일 연속 보았다. 매 번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만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책에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도 썼듯, 나에게는 상황별 영화 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 리스트를 넘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영화이다.
사실 영화가 개봉한 지 3달이 넘었지만, 글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랐다. 총 3번 보았는데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보았을 땐 마지막 10분 때문에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 번째로 보았을 땐 세바스찬과 미아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정신이 없었고, 세 번째 보았을 땐 데미안 차젤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을 넋 놓고 보기만 했다. 그 사이에 <라라랜드>는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했고 이제서야 <라라랜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LA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미국 서부에 대표적인 도시로 LA와 샌프란시스코가 있는데, 나는 항상 샌프란시스코를 더 사랑했다. 밝고 활기가 넘치며 형형색색의 집들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이에 비해 LA는 뭔가 칙칙했다. 생각보다 회색 빌딩이 많았고 할리우드의 거리나 돌비극장도 나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일까. 하지만 <라라랜드>에서 LA는 '꿈의 도시'이다. 미국에서 예술을 꿈꾸는 이들은 두 도시로 흩어진다. 뮤지컬 지망생은 뉴욕으로, 연기 지망생은 LA로. 뉴욕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있다면 뮤지컬 <렌트>가, 그 반대에는 <라라랜드>가 있을 것이다.
<라라랜드>가 특히나 좋았던 것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꿈과 노력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LA 도시 자체를 보여주려 했던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데미안 차젤 감독이 얼마나 LA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디 앨런이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유럽 시리즈를 찍는 것처럼, 데미안 차젤의 홈타운은 LA이다.
오프닝 넘버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그전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좋은 오프닝을 가진 영화는 <다크나이트>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였다. <다크나이트>의 강렬함이 좋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유쾌함이 좋았다. 하지만 <라라랜드>의 오프닝은 그 이상이었다. 오프닝 넘버만으로도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한 시작이랄까. 그래서 모닝콜도 "Another Day of Sun"으로 지정해 놓았다.
내가 <라라랜드>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라는 점이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 혹은 뮤지컬 영화는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 영화 시장은 덜 하지만, 특히 할리우드가 그렇다. 1930년부터 전성기를 맞은 할리우드는 지난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명작들을 생산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무려 89회였다. 이미 많은 수의 영화가 제작된 환경에서 젊은 감독의 새로운 시선을 담은 명작이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는 자비에 돌란이, 미국에서는 데미안 차젤이 사랑받는 이유이다. 원작 없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영화이면서, 기존의 정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라라랜드>를 보았을 때, 그 충격이 컸다. "이게 정말 오리지널 영화라고?"하면서 놀라워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라라랜드>가 사랑받은 이유는 고전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오마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라라랜드>와 이 영화가 오마주한 영화들의 장면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감독이 얼마나 고전 영화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완전히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관객에게 익숙한 고전 영화들 중요한 장면을 오마주 했다. 장면뿐만 아니라 시네마코프55라는 기술적인 부분까지 고전 뮤지컬 영화를 오마주 했으니, <라라랜드>는 데미안 차젤 감독의 고전 뮤지컬 영화에 대한 찬사임이 틀림없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10분은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마지막 10분으로 인해 이 영화는 단순한 청춘 로맨스 영화에서 인생과 현실을 담은 영화가 되었다. 첫 번째로 영화를 보았을 때 그 10분이 아쉬웠다고 엄마에게 말을 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현실인 거야."
우리는 이별한 뒤 'What if'를 끊임없이 되뇌곤 한다. 나도 그랬고 <500일의 썸머>의 톰도 그랬고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도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 그 기억은 찌질하고 잊고 싶은 기억이지, <라라랜드>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었다. 비록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웃기고 바보 같은 일이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10분 동안 <라라랜드>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계속 만났더라면 그들이 어떻게 변했을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매 번 볼 때마다 울곤 했다.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
La La Land에는 청춘이 있고, 그들은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이 노래 가사가 <라라랜드>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꿈을 좇는 동안 흔들리고 사랑을 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데미안 차젤 감독은 그 모든 감정들이 의미가 있음을,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데미안 차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음악에 대한 광기와 꿈에 대한 열정에 이어 다음에는 어떤 감정을 다룰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