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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Dec 28. 2020

엄마의 난소암 수술 후기

수술이 무사히 끝난 첫날 밤, 서서히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6인실 복도 쪽 자리에 배정을 받았고, 다 커튼이 쳐져 있어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날 밤만은 우리 엄마가 제일 아팠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파 참지 못해 나오는 앓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일찌감치 밀어버려 머리카락 한올 없는 민머리에 퉁퉁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였고 몸에 항생제, 진통제 링거와 소변줄, 피주머니 등 너무 많은 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가 조금 움직일 때마다 그 줄들이 위협적으로 달랑거리곤 했다.


이미 진통제를 투여해도 아파서 끙끙 앓는 엄마 옆에서 나는 너무 무력했다.


무력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대신 아파해줄 수만 있다면...



딸. 울지 마.
네가 울면 엄마가 너무 마음이 아파.
낫고 있는 거니까 괜찮아.



눈도 뜨지 못하고 앓고 있으면서 저런 얘기를 하다니. 더 울라는 거야 뭐야. 숨죽이고 또 울었다. 그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다행히도 엄마는 느끼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지나가며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서도 생각보다 환자들을 강하게 키운달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수술 후 하루, 이틀이 지났을 때였던가 바로 소변줄을 빼고 직접 화장실에 가게 했기때문이다.


 아직 배드에 누운 상태에서 앉는 것도 힘든 상태였는데 소변을 보러 가려면 앉아서 서서 걸어가기까지 해야 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역이었을 것이다.


배가 아파 배드에서 다리를 땅에 내리지도 못해 내가 다리도 직접 내려줘야 했고 변기에 앉는 것 도와줘야 했다. 얼마나 아플지 감히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담당교수들이 회진하며 자기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엄마 담당 교수님은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고, 봐도 상세히 무언가를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그 대신 전공의 선생님이 올 때 조금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그마저 바빠 보여 눈치가 보였지만)


엄마는 난소, 난관, 자궁 모두를 제거하였고, 전이되어있던 림프절, 맹장도 제거했다고 했다.

그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암세포들이라 그런 것들은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니 더 안심이 되었다.



수술 후 엄마의 모습이 너무 처참?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이는 암세포들을 수술로 모두 제거했다는 소리가 그렇게 기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차츰 회복되어 가 엄마와 옥상정원을 거닐며 제일 처음 진단 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불과 3개월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잘 해쳐 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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