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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06. 2024

훈련병을 위한 통신보약

D-540

"엄마~"

닷새 만에 듣는 네 목소리였다. 복받치는 설움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너는 꺼이꺼이 한참을 울었지.

"많이 힘들구나? 뭐가 제일 힘들어?"

"다..."

한바탕 울고.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몸살이 났는데 친구들이 약 챙겨줘서 이제는 괜찮아."

그러면서 또 울고...

"똥은 잘 쌌어?"라는 아빠 질문에,

"응. 잘 싸고 있어."라는 말에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가.

"밥도 잘 나오지? 엄마 밥 안 먹고 싶어?"라는 엄마 질문에,

"먹고 싶지."라며 또 울고.


네 목소리를 듣기만 한다면 모든 그리움이 녹아내릴 것 같았는데 힘들다며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니 애달파 어쩌지 못하겠더라. 관물대에 기대어 고개를 파묻고 훌쩍이며 전화하고 있었을 너. 생활관 동기들 모두가 부모님이나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느라 시끌시끌한 가운데에서 전화기 너머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을 너.

서럽게 들썩이는 등짝이 그려져 가슴이 시렸다.


주어진 한 시간 동안 형,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통화를 했다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며칠 만에 벌써 네 목소리가 씩씩하고 의젓해졌다며 감격하시더라. 형은, "할만하다고 센 척하던데?군대 별거 아니야~"라고 울적한 엄마를 위로하더라.

다른 식구들에게는 덤덤한 척했지만 엄마아빠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져 내린 너. 맥없이 아기가 되어버렸구나.



입대한 아들이 부모에게 거는 전화를 통신 보약이라고 하지. 아들의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가 부모들에게는 보약 한 사발 들이킨 것 같다는 의미이다. 복받치는 설움에 눈물을 쏟아내던 네가 다음날 씩씩해진 목소리로 다시 전화했을 때 생각했단다. 첫 통화는 오히려 부모가 아닌 훈련병들에게 보약이 아닐까.


부모,사회와 처음 단절되어 느끼는 두려움. 낯선 이들 사이에서 느끼는 어색함. 엄격한 규칙과 규율을 지키면서 일사불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생활이 500여 일이나 남았다는 답답함. 그 복잡한 심경에 갇혀있던 훈련병에게 부모와의 첫 통화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샘물 같을 테지. 타들어 가던 목을 축이고 나면 이제는 좀 살만하다 싶고 당분간은 버틸 힘이 나는 오아시스.


첫 통화 때는 우느라 잠긴 목소리로 묻는 말에 겨우 대답만 하더니, 두 번째 통화 때는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일주일간의 훈련소 이모저모를 전해주더구나.

종교활동 때 불교를 선택했는데 작은 빵 하나와 이온 음료를 받았다는 이야기, 교회에 갔더라면 싸이버거를 받았을 텐데 아쉽다는 이야기, 윗몸일으키기는 잘하는데 팔 굽혀 펴기는 못한다는 이야기, 첫 구보 때 너무 힘들어서 토할 뻔했다는 이야기, 비가 와서 판초를 입고 나갔는데 방수가 전혀 안 되어서 옷이 다 젖었다는 이야기, 단수가 되어서 아직 샤워를 못 하고 있다는 이야기, 생활관 친구들과 친해졌다는 이야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지낼만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단다.


통신 보약은 너를 키우는 약이었다.

네가 흘린 눈물은 단단한 알을 깨는 연화제였다.

이윽고 비상할 네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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