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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01. 2024

집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 D - 516 >

네가 입대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첫 통화 때 우느라 떨리던 네 목소리가 이제는 제법 걸걸해지고 두꺼워져서 '군인 아저씨'라는 말이 어울리더구나. 한 달이 어땠니? 벌써 한 달이 되었나 싶니? 아니면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지났다 싶니?


유난히 군 사망사고 소식이 많았던 일주일이었다. 누군가의 아들, 연인이었을 그들의 소식에 가슴이 답답해졌지. 안에서 소식을 접한 훈련병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할까. 감히 짐작도 못 하겠구나.


네 입대 후 엄마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매년 5, 6월은 학교 수업이 가장 많은 달인데 올해는 주말 일정까지 더해져 쉬는 날이 거의 없구나. 집에 있는 동안에도 수업 준비를 하거나 학생 활동지를 출력하느라 컴퓨터와 프린터기 옆을 지키고 있다. 널어놓은 빨래를 개어 놓을 겨를도 없고 밥도 잘 못 해 먹는 날이 이어진다. 네가 없으면 시간이 꽤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다른 것들로 꽉꽉 채워졌다. 이 많은 일거리가 어디에 꼭꼭 숨어있다 나왔나 싶을 정도다. 실컷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빠와 형의 귀가가 늦어지는 캄캄한 밤, 정신없이 일하다 문득 싸한 기분에 고개를 들면 빈 집안의 적막한 공기가 훅 덮친다. 그제야 네 부재를 실감하지. 사람 한 명이 사라졌을 뿐인데 공간의 밀도는 한없이 낮아졌다. 세 식구가 모두 있어도 마찬가지다. 허전함을 넘어서는 휑함은 그리움 이상의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엄마를 집에 묶어두던 단단한 끈이 사라진 듯, 집에 있어도 편치 않고 붕 뜬 것 같구나.


네 방에 들어가 본다. 흐트러지지 않은 침대, 먼지만 뽀얗게 앉은 책상,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서랍장. 어디에도 네 흔적이 안 보인다. 방문을 열면 분명 네 체취가 나는데 너는 보이지 않으니 실망이 더 커진다. 네가 누워있던 소파, 게임을 하던 컴퓨터 책상, 밥을 먹던 식탁. 모든 곳에서 네가 떠오르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헛헛하다. 냄새로도, 기억으로도 집은 채워지지 않는구나.


집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먹고 자고 떠들고 머무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정의 내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언젠가, 엄마 아빠만으로 집을 정의 내려야 하는 때도 오겠지만, 아직까지 집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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