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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15. 2024

공짜 커트를 거부합니다

< D - 500 >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반삭을 합니다.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 입대 바로 전날 미용실에 들릅니다.

큰아들은 친구들이 우르르 쫓아가 바리깡을 들고 한 명이 한 줄씩 맡아 밀어줬다고 하더군요. 그들만의 의식을 치렀나 봅니다. 


작은 아들의 입대를 며칠 앞두었을 때, 동네 미용실 문에 붙은 안내문 하나를 보게 됐습니다. 

"군입대 전에 반삭 무료!!"

흰색 A4 용지에 급하게 쓴 듯한 문구에는 별이 여섯 개나 그려져 있어 깜짝 이벤트라는 걸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입대 전 아들의 머리를 이곳에서 깎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20년 가까이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은 원장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일요일마다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는데, 무료라는 분명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머리를 깎아야 하는 날이 되자, 입대를 하루 앞둔 시점이 되자 무료로 깎아준다는 그 미용실에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공짜로 잘라준다는데 왜 안 가냐며 의아해하는 아들을 데리고 아빠 단골 헤어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바리깡으로 남김없이 밀어버리는 그 단순한 작업을 위해 2만 원을 써야 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기 때문입니다. 


입대 전날은 아들만큼이나 엄마도 예민해집니다. 당분간만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원한 이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안전하리라는 머릿속 믿음과는 별개로 불안과 염려가 가슴에 들어찹니다. 그런데 공짜로 반삭을 해준다고 하니, 혹시 청년들에게 선행을 베풀어 원장님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 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원장님 아들이 입대했는지 어쨌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가를 앗아가는 것일지 모르니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복, 운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용실 원장님의 아들이 군 복무 중이어서 아들 같은 손님들에게 인심을 쓰려는 것이거나, 군대와 관련한 어떤 사연이 있어 좋은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려던 미용실 원장님을 한순간에 남의 앗아가는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종교는 샤머니즘이라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오릅니다. 돈 같은 유형의 것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알 수 없는 무형의 것에 더 마음을 쓰고 의지하는 나약한 존재가 저였습니다. 인류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인간은 이성적, 합리적일지 모르겠으나 저라는 사람은 아들의 입대 앞에서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먹었던 것이 화의 근원이 되어 아들에게 미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니, 이쯤 되면 샤머니즘은 종교가 아니라 병이 아닐까... 싶네요.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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