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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6. 2024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교육자원봉사를 다니다 보면 여러 유형의 학급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학급 분위기의 호불호를 따지고 평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능력 있는 강사라면 어떤 학급의 분위기든 장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수업이 원활한 학급과 그렇지 못한 학급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수업에도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믿었고 그래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에 말입니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넘어 넘치는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도 조만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9월까지는요. 하지만 10월에 만난 어느 학급은, 저를 다시 겸손하고 예의 바른 강사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보통의 디베이트 수업은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학생들로 넘쳐납니다. 덕분에 준비한 내용을 모두 전하려면 늘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반은 달랐습니다. 조용했습니다. 경청을 위한 열정적인 침묵이 아니라 무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위에 가까웠습니다. 시간은 남아돌았지만 제 맥은 쭉 빠졌지요. 

입안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으로 쓰는 게 귀찮다며 읽기 자료에 있는 근거를 가위로 오려 붙이겠다는 일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안 된다고 고집부리기는 힘들다고 생각돼 허락했더니, 아이들은 후딱 해치우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3회 차 중 마지막 날은 디베이트 실습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과 강사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입안문부터 책상 배열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반은 이번에도 달랐습니다. 입안문을 쓰지 않은 학생도 많았고 수업 시작 후 책상을 배열하기까지 15분이나 걸렸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어떤 요청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당연히 실행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10월인데도 제 등이 흥건하게 땀으로 젖은 이유입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디베이트 수업은 마쳤습니다. 학생들과 학교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주었던 학습 자료 외에 스스로 조사한 자료를 잔뜩 펼쳐놓은 학생, 모둠의 불성실한 학생을 다독여 수업에 참여시키는 학생, 못 이기는 척하며 친구의 요청을 들어주는 학생.

무질서한 학급 안에도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하는 학생들은 있었습니다. 무례한 학생들 중에도 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은 있었습니다.      


애쓰는 강사를 위해 담임선생님, 위클래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보조교사를 자처했습니다. 책상 배열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 옆에 서 있어 주었습니다. 조용한 권위가 절실했던 순간, 교감 선생님이 같은 공간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이내 차분해졌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선생님들이 저를 에워싸고 사과를 하셨습니다.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많은 학급이라 수업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회성으로 수업을 한 저보다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이 더 힘드신 것을 안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죄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앞에서 꼼짝 못 하는, 죄인이 되어버리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진심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요.      

학교 선생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모습에 감동한 강사가 있다는 것을요.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는 것을요.     

저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나라는 사람은 학교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훌륭한 강의를 소화해 내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을요. 그러니 아직은 교육자원봉사를 놓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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