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금요 문장 공부 >
[오늘의 문장] ☞ <유선경(2023), 구멍 난 채로도 잘 살 수 있다, 사랑의 도구들, 콘택트, 101p>
구멍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본다는 거니까. 이젠 받아들여. 네가 너의 구멍을, 네가 너를. 지금 너의 문제는 구멍이 났다는 게 아니라 구멍이 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신은 그렇게까지 대책 없는 구조로 인간을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영혼은 벽돌담이 아니라 그물 같은 거야. 빈틈없이 쌓아 올려서 구멍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들처럼 구멍이 나서 '무엇'이 새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거야. 바로 그 '무엇'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그렇게 조금씩 영혼이 자라는 거지. 사람의 영혼은 자랄수록 단단해져. 구멍이 난 채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오히려 그 덕에 더 잘 살 수 있어. 정말이야. 믿어도 좋아.
자꾸 짜증이 나고 마음이 불편하다는 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네가 너의 단단하고 견고했던 고집을 인식했다는 거니까. 즐겨봐. 온갖 짜증을, 불편함을. 지금 너의 문제는 짜증이 났다는 게 아니라 짜증 나는 상황과 상대로 인해 네가 한 단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거야. 신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생각과 성격은 견고한 요새 같은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벌판 같은 거야. '적'이라 생각되는 외부의 공격을 끊임없이 막아내고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공격을 통해 조금씩 견고한 성을 쌓아나가는 게 삶이거든. 나의 사상과 소신을 단단히 붙잡은 채 외부의 모든 자극, 나와 다른 사상과 소신을 물리치고 차단하면 안 돼. 그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그들로 인해 흔들리는 내면을 들여다봐. 그러다 보면 짜증과 불편함의 본질이 보일 테고 더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운 성을 쌓을 수 있을 거야. 짜증이 나고 불편한 마음이 생겨야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불편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곱씹어보면 이해 못 할 사람, 상황이 없습니다. 상대도 나름의 생각과 논리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내가 참이라고 따랐던 원칙, 옳다고 여겼던 믿음,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가치가 서서히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고 모두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옳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상황은 반복됩니다.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힘든 일은 없습니다. 타협 이전에 대화, 대화 이전에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마음속에 단단히 쌓아놓은 성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견고하게 지어놓은 내 성만이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대화를 나누면서 견고한 나의 신념이 깨지고 무너지는 불편함을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 불편한 경험이 나를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까요. 고집스럽게 지켜야 하는 그 무언가는 나를 속박하고 이내 지치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신념이라는 건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할 때 더 건강해지고,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아름다우며, 멀리서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