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모르는 이에게서 온 DM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대회에 나가는 아이들이 디베이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 대회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들이 덜컥 참가 신청을 했는데, 대회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들어보니 생소한 형식이라 당황했다는 어머니들은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저에게 연락하셨던 것입니다. 디베이트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맡아야 하는 저의 부담감이 더 컸을지, 검증해 본 적 없는 코치에게라도 아이들을 부탁해야 하는 어머니들의 부담감이 더 컸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흔쾌히 수업을 맡았고, 어머님들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제게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습니다.
두 시간씩 총 세 번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어진 여섯 시간 동안 디베이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형식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대회 주제에 대해 완벽히 지도해야 했습니다. 디베이트마다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대회 요강을 보며 꼼꼼히 연구했고, 선정된 도서를 읽고 요약·정리했으며 주제 파악을 위해 토론개요서를 작성했습니다. 강의 계획에 맞게 워크북을 만들어 제본을 했고 자료 조사도 마쳤습니다.
약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밝고 적극적인 아이들 덕에 첫 두 시간이 알차고 즐겁게 끝났습니다. 대회 준비라는 중압감은 있지만, 그래도 즐기는 마음으로 준비할 것을 강조, 또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 때는 아이들이 찬성팀을, 제가 반대팀을 맡아 디베이트 실습을 했습니다. 디베이트 형식에 익숙해지려면 여러 번 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생각한 묘책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똑같이 저도 찬성 반대 입안문을 작성했습니다. 4인 1팀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1인 4역을 소화해 내며 진땀을 빼야 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상대로 디베이트를 해야 했으니 아이들도 녹록지는 않았겠지만, 적당한 긴장을 딛고 엄청난 흥분을 느끼며 디베이트의 맛에 빠져드는 그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어머님들의 요청으로 한 시간이 추가되어 세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에 맞게 준비하기, 상대팀의 어떤 주장에도 반론을 할 수 있도록 근거 자료를 찾아 메모지에 정리하기, 상대팀에게 할 질문 다섯 개씩 만들어 오기 등 아이들은 제가 내준 과제를 성실히 준비해 왔습니다. 대회 전날, 마지막 점검을 위해 한 시간만 더 봐주십사 하는 어머님들의 부탁에 따라 진짜 마지막 만남을 가졌는데, 그 순간까지도 아이들은 시종일관 밝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 이러다 우승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너무 흥분한 아이들에게, "겨우 여덟 시간 수업 듣고 우승을 노린다면 도둑놈 심보지. 쌤도 너희들이 우승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저 끝까지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며 교과서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대회 당일, 예선전이 끝난 시각 어머님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파김치가 되어 나오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네 명 모두 토론을 마치고 나오며 처음 한 말이 "진~~~~ 짜 재미있었어요!"였다는 거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동인데, 그로부터 20여 분 뒤, 더 감동적인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이 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 시간 후에는 결승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디베이트를 배워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그것도 4학년 아이들이, 여덟 시간의 짧은 특훈 끝에, 고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14개 팀 중 가장 잘한 팀으로 선정됐다는 것입니다. 눈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자메이카 젊은이들이 봅슬레이에 도전하는 내용의 영화 <쿨 러닝>이 연상됐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아름다운 도전에 그쳤다는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것.
우승 소식을 어디에 전할 데도 없어 잠시 가족들에게 거들먹거렸습니다.
"키야... 단 여덟 시간 만에 디베이트 문외한 아이들을 우승까지 하게 한 코치라니. 그게 바로 나야."
하지만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대회 우승은 모두 아이들의 덕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여덟 시간 동안 아이들이 했던 말, 표정, 행동을 돌이켜보면 우승은 당연했습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던 눈빛,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지만 시종일관 웃음기 가득했던 입,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연필을 잡고 바쁘게 움직이던 손. 모든 것이 우승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왠지 우리가 우승할 것 같아. 아 떨려."
"와! 너무 떨리는데 재미있어요."
"아.. 내가 너무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얘들아."
"아니야~ 잘했어. 잘했어."
"우승하면 교장실 가서 상 받는 거 아니야?"
"정말? 와 진짜 설렌다. 너무 좋을 것 같아."
"이따 저녁때 모여서 또 준비하자!"
저희끼리 재잘대는 수다가 마냥 귀엽고 기특했던 것도 그 안에 들어있는 긍정확신, 다정함, 열정이 꽤 기분 좋았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독일 심리치료사 롤프 메르클레의 명언이나, 논어에 나온다는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저 신나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우승과 그 이상의 만족감이 뒤따른다는 것을 확인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즐거웠던 과정만큼이나 행복했던 결과, 두고두고 회자될 즐거운 추억을 감동 실화 영화 한 편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