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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낭만 봉사자!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5.11.07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아웃렛> 송광용

오늘의 행복이 지금까지의 평균치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어제까지 계속 마이너스였더라도 오늘 즐거운 일이 있고 웃을 수 있다면 행복의 총수치가 플러스인 것처럼 느껴진다. 평균의 지배를 받지 않은 것 그게 행복의 미덕이다.


[나의 문장]

낭만은 현실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이 아무리 흔들어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서 현실을 가장 우아하게 견디는 방법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라고 외칠 수 있는 것, 그게 낭만의 본질이다.


[나의 이야기]

불평불만이 많아진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늘 그렇다. 3월부터 시작한 수업에 지칠 대로 지친 11월이 1년 중 가장 큰 고비다. 2학기에 교육자원봉사로만 5개 학교 10개 학급, 총 60시간을 강의하고 있는데, 1학기 때보다 수업은 훨씬 수월하지만, 관용과 배려는 그와 반비례한다. 그러다 보니 봉사에서 오는 만족과 보람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고 그저 봉사가 남은 5주가 일찍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2025년의 분량으로 주어졌던 만족과 보람을 다 써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이 학급은 이래서 힘들고 저 학급은 저래서 힘들다는 푸념만 늘어간다. 기계적인 설명과 더 기계적인 반응을 이어가는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마음의 리셋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났다. 내 얼어붙은 바다를 깨버린 사람. 닥치고 그냥 달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사람.


알고리즘이 이끌어 보게 된 영상은 그의 계정에 처음으로 올라온 영상이었다. 11월 7일에 공개된 첫 영상의 조회수는 13일 현재 100만이 넘었고 구독자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비계공(임시 가설물인 '비계'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전문 기능인)으로 일하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마라톤 연습을 하는 마라토너다. 운동복 대신 작업복을, 러닝화 대신 안전화를 착용한 채로 뛴다. 선수 출신도 아니고 페이스 조절도 잘 못하는 것 같은 어설픈 뜀박질로 2025 공주백제마라톤 남자 풀코스에서 우승했다. 11월 8일에는 해남 땅끝 전국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바로 다음 날인 9일에는 부여 굿뜨래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해 이틀 연속 풀코스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이 사람. '낭만 러너'라 불리는 심진석 선수다.


30분이 채 안 되는 영상에는 평범한 그의 하루가 담겨있었다. 여느 직장인처럼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 출근해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커피 한잔을 마신다. 오후 근무를 한 뒤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퇴근한다. 다른 게 있다면 지하철역까지의 구간을 마라톤으로 뛴다는 것.


그는 매일 8km 이상을 뛰는데 스마트 워치도 없고 러닝화도 신지 않았다. 페이스를 어떻게 파악하냐는 질문에, "특별히 계산하지 않는다, 시간에 맞춰서 능력껏 뛰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달리자 달리자'라고 말하며 달린다"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해맑게 웃는다. 정말 행복해서 웃는 표정이다. 그런데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심지어 광기가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인데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비범(非凡)한 범인(凡人)이랄까.


변명이나 핑계 따위는 늘어놓지 않는다. 뛰기 위한 별다른 준비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밥 먹듯 숨 쉬듯 뛴다. 초반에 전력 질주하면 페이스를 잃는다는 지적이 있든 말든, 러닝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는 요청에 사람들이 욕을 하든 말든, 달린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노래가 '무조건'인 이유도 달린다는 말이 많이 나와서란다. 첫 영상의 댓글 중 "나이키 뭐 하냐? 이 분이야 말로 ‘Just Do It’의 표본이다."라는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실패하는 사람은 늘 변명,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다. 실체 없는 불만과 핑계는 사람을 편협하고 옹졸하게 만든다고 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오는 대사다. 어거지로 일을 하다 보니 능률도 안 오르고 즐거움도 없다. 그러니 결과가 성공, 완수라고 해도 내용은 실패다. 올해를 한 달 반 남겨둔 지점의 나도 그랬다. 달리고는 있지만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죽을상으로 달리는 형국이었다. 3월의 기대와 5월의 낭만, 7월의 열정과 9월의 벅참을 11월의 환희로 잇지 못하고 있었고 그게 못내 속상했다. 그런데 오늘 발견한 이 영상이 내가 언제나 만족과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달려갈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말한다. 감상적이고 이상적이라는 것이 애쓰지 않고 치열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식이 현실적인 것, 일상적인 것과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객기, 겉멋이라며 폄하하지만, 이런 사회적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낭만은 본질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마라톤이란 이런 것이다', '자고로 마라토너라면····', '달리기의 기본이란···' 이런 조언과 충고, 비난과 비판이 넘쳐나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영상 속 마라토너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어쩐지 그 별명이 그를 현실 세계와 분리시켜 버린 듯해서 서글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래서, 더 멋있었다. 현실을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게 살아내는 방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풀어졌던 마음의 끈을 단단히 조이고, 그저 달리련다. '아이들이 귀여워서, 선생님이 따뜻해서, 감사해서, 잘해줘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와 같은 수많은 이유는 본질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다는 것이 본질이다. 그게 낭만이라면, 나는 낭만 봉사자다.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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