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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감옥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5.09.26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스스로 자기에게는 안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 그 안정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주고, 그래서 안정이 조금이라도 파괴되면 다시 신경질을 냈다.


[나의 문장]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잠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잠과는 거리가 먼 것에만 관심을 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면 원인을 찾아 헤매면서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나의 이야기]

두어달째 불면증과 사투 중이다. 여름에는 날이 더워서 잠들기 힘든 줄 알았다. 중요한 강의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 못 드는 줄 알았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도 쉬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불면의 밤이 늘어나면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갱년기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삶을 피폐하게 한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온전히 깨어있지 못한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고 싶은 의지 따위는 우습게 밟아버리며 일의 능률, 효율, 완성도보다는 그저 '꾸역꾸역 완수'가 목적인 생활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불면은 벌이다. 잠을, 잠이 주는 선물을 거부한 지난날에 대한 형벌이다. 늦게 귀가하는 자녀들을 돌본다는 이유에서 시작한 늦은 취침은 그대로 습관이 되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에 홀로 깨어 깊은 밤의 공기를 만끽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잠자야 하는 시간에는 자야 한다는 명제를 무시한 채 깨어있어야 하는 정당성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무식하게. 만끽하던 공기는 공포가 되었고 누렸던 자유는 감옥이 되었다.


먹는 것, 싸는 것, 자는 것. 이 기본적인 세 가지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지를 절감하고 있다. 몸에 좋은 것을 입에 넣고, 먹은 만큼 싸고, 자야 할 시간에 푹 자는 것만 잘하면 되는데, 그 간단한 걸 못하고 살았다. 어떤 욕망이 그들보다 귀하고 중했을까.


밤이 온다. 잠들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른 잠자리에 드는 참회의 몸짓도 소용이 없다. 후회와 희망 사이에서 헤매다 지쳐 잠이 들기를 기도하며 긴긴밤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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