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 별바라기의 목요일에 만난 자연 > 2025. 11. 13.
< 라라크루에서는 목요일마다 별바라기 작가님이 발견한 자연을 글감 삼아 글 쓰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소중하게, 애지중지 지키고 가꾼 것이 있나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없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살피는 대상은 아이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넘쳤다. 식물을 비롯한 다른 생물에 쓸 여유와 에너지는 없었다. 아이들이 좀 컸을 때, 유능한 식물 집사 친구를 만났다. 관심도, 소질도 없던 나에게 자신이 키우던 사랑초를 나눠주었고, 화원에 화초 쇼핑도 함께 가주었다. 덕분에 현재 우리 집 베란다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스무 개가 넘는다.
그녀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베란다로 나가 팔을 걷어붙이고 화초의 상태를 살펴주었다. 마른 잎을 따주고 웃자란 아이들도 정리했다. 나는 겁이 나서 손도 잘 못 대는 잎들을 툭툭 뜯어 화분 빈자리에 무심하게 심었다. 그러면 어느새 뿌리를 내리며 또 하나의 성체가 됐다. 그녀 덕에 화초들 모두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그런 내가 이제는 믿음직스러웠는지, 작년 5월 그녀는 내게 작은 화분 하나를 선물했다. '필레아 페페'라는 이름의 아이였는데, 앙증맞은 동그란 잎이 사방으로 자라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그 화분을 내밀면서 엄청난 미션 하나를 던졌다.
"아들 제대할 때까지 아들이다 생각하면서 잘 키워!"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 화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게 곧 아들의 안위와 직결될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물을 너무 자주 주어서 뿌리가 썩어버리거나 반대로 너무 안 줘서 말라죽을까 봐 걱정됐다. 계절에 따라 적절한 물 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감각은 없기 때문이었다. 베란다에 내놨다가 뜨거운 햇볕에 타버리면 어쩌나, 거실로 들여왔다가 빛이 모자라 시들 거리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줄기에 매달렸던 잎이 힘없이 툭 떨어지는 날이면 마음에도 쿵 소리가 났다. 그러다 작은 이파리가 하나 올라오면 기특해서 고맙다는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러면서 계절이 일곱 번 바뀌었고 아들이 전역했다.
아들과 페페 모두 18개월을 잘 버텨냈다. 페페의 모양새가 아주 훌륭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조그만 잎들이 새로 올라온 걸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마침 집에 놀러 온 친구 눈앞에 화분을 들이대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얼마나 공을 들이며 살려냈는지 열변을 토했다. 사람 한 명을 키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 사람을 대신하는 식물 하나를 키우는 일은 그보다 더 심장 쫄깃해지는 일이었다.
내년에는 그녀의 아들이 입대한다. 그녀에게 어떤 식물을 선물하면 좋을까, 슬슬 알아봐야겠다. 복수는 아니다. 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