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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05. 2020

게국지에는 게가 안 들어가유~~

아버님 산소를 찾을 때마다 들르는 서산 밥집이 있다. 새벽에 길을 나서 8시가 조금 넘을 무렵 도착하면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시골밥상이 그대로 나오는 곳이라 즐겨 찾게 되었다. 7,000원짜리 백반정식이지만 푸짐하고 맛깔난 반찬이 일품이고, 이 집만의 시그니처 메뉴인 '게국지'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그렇게들 찾아와요. 부산서도 찾아와..."라며 주인 할머니는 얌전히 자랑을 하신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있노라면 그런 자랑이 무색할 만큼 의아해하는 손님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어? 제가 인터넷에서 본 게국지는 이게 아닌데요?"

"왜 게가 한 마리도 없어요?"

그러면 서빙을 하시던 남자분이 설명을 시작하신다.

"붕어빵에 붕어 들어가유~, 안들어가유? 그거랑 똑같어유~~ 게국지의 '지'는 김치라는 뜻이유. 쉽게 말해 게장 국물에 김치넣어 끓인거라고 보시면 돼유. 인터넷에 검색하시면 제가 말한거랑 똑같이 나와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게국지라고 안불러유. 개꾹지라고 허지."

"에이... 그래도 게국지면 게 다리 하나 정도는 넣어야되는거 아녀요? 딴데서 보니까 게가 통째로 들어가던데?"

"그건 꽃게탕이쥬. 우리 어렸을 때 먹던 게국지는 그런 게 아니유. 운 좋으면 게다리 하나정도는 들어있슈. 저기 테이블거는 들어갔네!"


함께 식사를 하시던 어머님은 어린 시절 어머님의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게국지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태안이니까 꽃게가 얼마나 많이 잡히냐.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좀 잘 살았거든? 꽃게가 한 다라이 넘치게 집에 들어와. 그럼 그 시절에 냉장고가 있냐 뭐가 있냐? 그걸 항아리에 넣고 간장을 붓는 거야. 게장을 담가 두는 거지. 한참 게장을 먹고 나면 국물이 남잖아? 그럼 먹을 거 없던 시절이니 그 국물을 버리남? 뒀다가 김장김치 씻어서 같이 끓이기도 하고 시래기랑 같이 끓이지. 운 좋으면 게 다리 하나 정도 같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원래 게랑 같이 끓이는 건 아니여~ 이 집 게국지가 딱 그 맛이다. 짭짤해서 국물을 한없이 퍼먹게 되는 맛."

"그츄? 이게 이상하게도 가끔 생각나는 그런 맛이유. 그러니까 게가 안들어가도 또 드시러 오는 거유. 우리 게국지는유 아무리 먹어도 물이 안맥혀유. 짜도 물맥히는 짠맛이 아니유. "

아뿔싸... 이 남자 주인에게 한번 걸리면 끝없는 대답 지옥에 갇히게 된다. 질문을 해도, 일행과 대화를 해도 어느새 순서를 낚아채 설명을 이어나가신다.

"밴댕이 무침 더드려유? 밴댕이는 왜 밴댕이인줄 알아유? 그거 다른 말로 디포리유. 백과사전 검색하면 다 나와유~"

"그건 마늘쫑이유. 그렇게 만든건 첨 드셔보쥬? 아마 우리집밖에 그렇게 한데 없을걸유?"

반찬 하나하나 이름에 얽힌 유래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술술술술 읊어대신다. 가게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분...


멀리 앉아계시던 할머니 사장님께서 내 옆으로 쓰윽 다가와 앉으셨다. 뭐 하실말씀이 있으신가 하는데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셨다.

"너무 맛있어요~ 어머님이 해주시는 집밥, 딱 그 맛이예요~"

"우리가 원래 승질이 그래. 사 오는 반찬은 놓지를 못해. 다 내 밭에서 나는 걸로 내 손으로 끓이고 무쳐야 맘이 놓이지."

어머님과 똑같다. 어머님도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승질이, 남이 하는 건 못 미더워. 내가 씻고 말려서 상에 놔야 맘이 놓이지."

그런 고집이 게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는 게국지를 만들어내는가 싶다.


"할머니~ 아드님이 설명을 너무 잘해주셔요~" 하니 할머니가 정색을 하신다.

"내 아들 아녀. 아들 친구여! 맨날 와서 저랴~"

말씀은 그리 퉁명스럽게 하셔도 아들 친구가 하는 대로 놔두시는 것 보면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가 보인다.


홀에 세 개밖에 없는 테이블이 꽉 찼는데 새 손님이 들어온다.

"자리 없어요? 아까 전화드렸는데..."

아들 친구인 남자분이 다시 응대하신다.

"전화 한 손님이 한둘이 아니유~ 여기 다 전화하고 오신 분이유~"

"아까 전화하니 자리 있으니 오라고 하셨는데..."

"그건 저 아니유. 우리 114 담당은 따로 있슈~ 안으로 가서 앉으슈~"

작은 방으로 손님을 모시고 들어가 다시 게국지부터 설명을 하신다. 어딘가에 있었을 삼촌, 형, 아빠 같은 모습으로 구수하게 설명하시는 얘기를 들으며 게가 들어있지 않은 게국지 국물을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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