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보약

전역까지 D-534

by 늘봄유정

드디어...

말로만 듣던 "통신 보약"을 나도 받았구나. 군부모들 사이에서는 아들들에게서 온 전화, 통신보안을 통신 보약이라고 부르더라구. 말도 참 잘 지어낸다. 그 어떤 보약보다 힘이 나는 명약이라 그렇겠지?


이번 주말에는 전화가 오리라는 예상, 기대를 하고는 있었지. 너희 5중대 남 OO 대위님이 올려주신 공지사항에 안내가 되어 있었거든. 초등학교 입학시킨 줄 알았어. 매주 올라오는 공지사항에는 일주일 훈련 스케줄이 올라오고, 전화는 언제쯤 갈 거다, 사진은 언제쯤 올라갈 거다, 소포는 언제쯤 발송할 거다 등 세세한 것까지 알려주더라.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 나오게 생겼다. ㅎㅎ


막상 전화를 받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아빠랑 전화 오면 뭐 물어볼지 미리 생각해놨는데도 "엄마~"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에 "호재야~~~"라는 말만 겨우 나오더라.

"엄마~"

"호재야~~~~~"

"어~~"

"전화할 수 있게 됐구나. 이제?"

"어~"

"아이구... 하하하... 어떻게 지내?"

"더워서 훈련도 안 해가지고, 동기들이랑 안에서 놀면서 지내~"

"그래?"

"편하게 있지~"

"동기들이랑 많이 친해졌어?"

"거의 다 용인 애들이라 건너 건너 알고..."

"아빠한테 전화 먼저 드리라고 편지 썼는데, 드렸니?"

"아빠하고 통화했어."

"한 명한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5분! 5분!"

"아... 빨리 끊어줘야겠네? 친구들이랑 해야 하니까? 하하"

"1분씩 하고 있어. ㅎㅎ"

"안 보고 싶냐!?"

"보고 싶지..."

"더운데, 다음 주부터는 훈련하겠네? 건강히 잘해~"

"오케이~"


네 목소리 들으니 그제야 떨어져 있는 게 실감이 났고, 밝고 늠름한 목소리를 들으니 한시름 놨단다. 그러면서도 전화기 너머 훌쩍거리는 네 소리가, 에어컨 바람에 콧물이 나서 그러는 건지 엄마 목소리 들어서 그런 건지 걱정도 됐지. 울었을 리는 없겠지? 천하의 이호재가 엄마 목소리 들었다고 울 리가...

겉으로는 센척하고 담담한 척하는 너지만 마음이 한없이 여리고 순둥순둥 하다는 걸 아는 나는, 혹시나 운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그게 또 살짝 반갑기도 했다. 씩씩했으면 좋겠지만 엄마 앞에서는 여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양가적 감정... 못 말리는 엄마지?


아.. 잠은 잘 자는지, 똥은 잘 싸는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묻지 못한 질문들이 고개를 들더라.


저녁식사 후 우리 가족 모두 소파에 널브러져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는데, 낮에 받았던 것과 같은 번호로 전화가 울리더라.

엥? 또 같은 번호? 하루에 두 번은 예상에 없던 일이었는데 그래서 첫 번째 통화보다 더 놀라고 반가웠단다.

"취사장 청소 포상으로 20분의 통화시간 준다길래 얼른 튀어왔지. 친구들, 친한 형들이랑 통화 다 하고 3분이 남았길래 또 한 거야~"

"아이고~ 우리 아들 군대 생활 잘하나 보네~"

스피커폰으로 켜놓고 우리는 돌아가며 못다 한 질문을 했단다.

"밥은 잘 나와? 먹고 싶은 건 없어?"

"여기 매일 고기 나오고 밥도 맛있어서 엄청 잘 먹어. 많이 먹는데도 규칙적으로 생활해서 그런지 살은 빠지고."

"하하하. 다행이네. 에어컨도 잘 나와? 더위 많이 타는데, 덥지는 않니?"

"어. 빵빵하게 잘 나와."

"똥은 쌌어? 몇 번 쌌어?"

"똥은 싸긴 싸는데... 토끼똥처럼 나와."

"어째... 차차 괜찮아지겠지... 뭐 필요한 건 없니?"

"아직 없어~"


그렇게 깜짝 선물 같은 통화까지 끝내니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아들을 군대 보낸 엄마라면 따라야 하는 계획표대로 따박따박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첫 통화를 끝냈으니 다음 주면 소포가 도착할 테고 또 잠깐의 가슴 찡함을 느끼겠지.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통화를 몇 번 더 받다 보면 수료일이 다가올 테고 후반기 교육까지 끝내면 자대로 배치받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자유시간에 받는 휴대폰으로 더 잦은 연락이 가능해질 테고 언젠가는 휴가도 나오겠지. 잦은 휴가에 심드렁해질 때면 제대를 할 테고 말이다.


이제 전역까지 533일 남았고 일정 중 2.7%를 완료했다.

여전히 너의 빈방은 허전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2.7%만큼의 안도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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