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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6. 2019

디베이트에서 형식이 중요하다고요?

디베이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요. 링컨-더글라스 디베이트, 의회식 디베이트, 팔리시 디베이트, 한국식 CEDA 디베이트, 칼포퍼 디베이트 등이 그것이죠. 디베이트나 토론마다 형식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은 같아요. 우리 팀의 주장과 상대팀의 주장 즉, 입안을 들은 다음 서로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유, 인정하지 않는 이유 즉 반박을 하게 되는 것, 중간에 상대측의 입안이나 반박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중 우리가 알아볼 것은 퍼블릭포럼 디베이트예요. 형식이 간단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어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지요. 


디베이트는 입안, 입안 교차질의, 반박, 반박 교차질의, 요약, 전체교차질의, 마지막 초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입안과 반박은 4분씩, 요약과 마지막초점은 2분씩, 모든 교차질의는 3분씩 진행돼요. 양 팀에게 똑같은 순서와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공정한 경기가 진행될 수 있어요. 각 팀은 2분 동안의 팀 준비시간을 자유롭게, 필요한 순간에 쓸 수 있지요. 이렇게 시간과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것도 토론과 다른 점인데요, 이렇게 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

"시간이 늘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 말해야 하기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을 무한정 말할 수가 없어요. 제한된 시간 내에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훈련하는 방법이 될까요?

"꼭 필요한 것만 말해야 해요."

그렇죠. 핵심적인 내용만을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되죠. 


순서와 역할이 나뉘어있다는 것도 특별한 점이에요. 보통 디베이트는 두 명에서 많게는 네 명이 팀을 이루어하게 되는데 각자 하나 혹은 두 개의 역할을 맡아 디베이트를 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게 돼요. 평소에 똑똑하고 말 잘하기로 소문난 학생만 디베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일반적으로 자유 토론을 하게 되면 말 잘하는 친구만 발언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아요. 소심하고 내성적인 친구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토론을 마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친구들도 토론 시간 내내 하고 싶은 말들을 떠올리며 심장은 계속 뛰었을 거예요.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에서는 모든 참가자에게 역할이 주어지고 누구나 발언의 기회를 갖게 돼요. 능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청중 앞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다 보면 능력의 차이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다른 디베이트 형식과 중고등학교에서 열리는 교내 토론대회 대부분이 찬성 측에게 먼저 발언의 기회를 주는데 반해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는 찬성 측이 반드시 먼저 발언하지 않아요. 디베이트 시작 전 동전 던지기에서 선택권을 갖게 된 팀은 '찬성과 반대, 먼저 발언과 나중발언팀'이라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전략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주제에 따라서 찬성과 반대 중 한쪽 측면이 좀 더 유리한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발언의 순서를 선택하기보다는 찬성, 반대의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게 되지요. 찬성과 반대 입장 중 유리하다, 불리하다를 따질 수 없다면 먼저 발언과 나중 발언 중 우리 팀에게 더 맞는 걸 선택하는 것도 전략이에요. 먼저 발언을 한다는 건 모든 순서에서 먼저 말한다는 의미예요. 심지어 교차질의 순서에서 질문도 먼저 한다는 거죠. 나중 발언을 한다는 건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의 가장 마지막 순서인 마지막초점이 나중 발언팀의 발언으로 끝난다는 거고요.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맨 처음에 말하는 거니까 먼저 발언팀이 심판과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겠네요."

"마지막에 말하는 게 더 기억에 남지 않나요? 나중 발언팀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먼저 발언팀은 반박이나 요약, 마지막초점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나중발언팀은 먼저 발언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준비를 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먼저 발언팀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나중발언팀이 더 정신없을 것 같기도 해요."


먼저 발언팀이 가장 유리한 순간은 교차질의 순서에서예요.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질문을 주도적으로 하려면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지요. 상대팀은 답변을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 팀은 입안문을 통해 우리 팀의 우수함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순발력이 뛰어나서 상대의 허점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다, 먼저 시작해서 디베이트의 분위기를 우리가 장학하고 싶다'라고 생각된다면 먼저 발언을, '우리 팀은 주제에 대해 자료조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상대팀의 반박을 듣고 재반박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 초점으로 심판과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생각된다면 나중 발언을 선택할 수 있어요. 동전 던지기에서 선택권을 가진 팀이 찬성/반대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선택권이 없었던 다른 팀은 먼저 발언/ 나중 발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양 팀 모두 하나씩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가 공정한 게임이라는 의미입니다. 


"형식이 너무 복잡해요."

"너무 어려워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누군가 따지더군요.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면 안 된다'라고요. 형식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정작 내용에는 소홀해질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형식이 중요해요. 특히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디베이트 과정에서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가정해 보세요.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을 순서, 시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말한다고 말이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찬성과 반대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요. 하지만 양쪽이 디베이트의 순서와 형식을 잘 숙지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정해진 순서대로 말하게 되면 정돈되고 핵심적인 내용을 주고받게 되고 듣는 사람도 혼란스럽지 않게 쟁점을 파악해 낼 수가 있어요. 초반에는 형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쉽고 간단한 주제로 디베이트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그러다가 형식에 익숙해지면 점점 어려운 주제로 넘어가게 되고 디베이터들은 이제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스포츠 경기와 같아요. 두 선수의 기량을 비교하려면 주어진 조건이 같아야 하죠. 기본 규칙이 동일해야 해요. 그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자기 마음대로 경기를 펼치면 실격하게 됩니다. 규칙이 익숙해진 선수는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에만 집중하면 돼요. 주어진 규칙 안에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기 내용에 집중하는 것. 

디베이트의 형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알고 나면 어렵지 않고요. 



* 입안

자, 그러면 각 순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먼저, 입안은 뭘까요?

"입 속이요~"

그것도 말이 되겠네요. 왜냐하면 입안은 우리 팀이 찬성 혹은 반대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순서인데, 서로의 입 속을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디베이트의 가장 첫 번째 순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지만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입안문'이라는 주장하는 글을 쓰고 그걸 잘 숙지해서 발표하는 거예요. 주장은 보통 3개에서 4개가 적당한데 왜 그럴까요?

"너무 많으면 정신없어서 기억 못 하니까요."

그렇죠. 우리 팀은 찬성하는 이유를 열 가지나 생각해 냈다고 좋아할 수가 없어요. 상대측뿐 아니라 심판과 청중이 우리 팀의 주장이 너무 많이 기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테고 그러면 디베이트가 정신없어질 테니까요. 그럴 때는 이유를 쭉 나열해 보고 비슷한 것끼리 묶어보는 방법을 쓰면 좋아요. 예를 들어볼까요? 

<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라는 주제의 찬성 측 주장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모두 말해보세요.

"눈이 나빠져요."

"거북목이 돼요."

"너무 많이 해서 중독이 될 수 있어요."

"초등학생은 한창 성장할 시기인데 스마트폰만 보다가 머리가 굳을 수 있어요."

"위험한 상황에서 부모님과 연락하기 위해서라면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되니까 금지해도 돼요. 키즈폰으로 충분하니까요."

"아직 어려서 사용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기 힘들어요."

"스마트폰만 하다 보면 다른 놀이를 점점 안 하게 돼요."

여러분들이 말한 여러 주장을 비슷한 것끼리 묶어볼까요?

"눈이 나빠지는 거랑 거북목이 되는 것이 비슷해요."

그러면 그 두 개를 묶어서 '신체적인 악영향'이라고 이름 붙일게요.

"중독이 된다는 거랑 시간 조절이 안된다는 게 비슷한 것 같아요."

"머리가 굳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요? 다른 놀이를 안 한다는 것도요."

그 네 개를 묶어 '중독 위험'이라고 할게요.

"그러면 하나가 남네요? 키즈폰을 쓰면 된다는 것."

그것은 '해결책'이라고 할게요. 그러면 찬성팀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첫째 '신체적인 악영향', 둘째, '중독 위험', 셋째, '해결책'. 어떤가요? 주장이 많아 보였지만 이렇게 정리하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좀 더 분명 해지지요? 


이렇게 주장이 정해지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해요. 첫 번째 주장인 '신체적인 악영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뭐가 적당할까요?

"눈이 나빠지거나 거북목이 됐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근거로 써도 좋지요. 다양한 예를 들어주는 것도 좋고요.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믿을만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근거를 덧붙이면 좋아요. 설문조사나 통계자료 말이지요. 

"주변의 어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엄마나 아빠가 매일 그렇게 말하니까요."

그것도 좋지만 그 어른이 의사라면 나의 주장이 더 신뢰할만한 것이 되겠지요? 우리 엄마가 매일 그렇게 말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OOO 의사의 말에 따르면'이라면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 훨씬 논리적인 근거가 돼요. 책의 문장을 인용한다거나 신뢰할만한 신문기사를 언급하는 것도 좋아요. 


입안은 디베이트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끝이기도 해요. 디베이트의 모든 내용은 이 입안문 안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반박과 교차질의 모두 입안에 나왔던 내용을 중심으로 이어져요. 입안의 내용이 별로 없거나 근거가 부족하면 상대팀이 반박할 내용도 없고 묻고 싶은 것도 없어요. 따라서 입안을 잘 준비하는 것은 우리 팀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상대팀과 심판, 청중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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