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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0. 2019

즉석에서 연설을 해보라고요?

디베이트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입안문 쓰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처음 앞에 나가 발표하는데 주제까지 어렵다면 긴장감은 배가 됩니다. 그래서 디베이트 첫 시간에는 늘 '즉석연설(EXTEMPORANEOUS SPEAKING)'이라는 것을 합니다.


National Speech and Debate Association(NSDA)는 다양한 스피치 프로그램과 디베이트 활동,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 고등학생 토론 단체입니다. 다양한 스피치 활동 중 '즉석연설'은 말 그대로 즉석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30분 동안 준비를 하고 발표를 하는 활동입니다. 즉석연설의 구조가 입안문의 구조와 같아서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청중 입장에서도 스피치를 경청하고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디베이트 수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즉흥연설 몇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이라는 주제에 대한 발표입니다. 경청해 주세요~~


< 주제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

하루 세끼, 일 년이면 1095끼, 평균수명 80년을 산다고 하면 우리는 평생 총 87,600끼를 먹고 삽니다. 끼니의 수만큼 다양한 음식을 먹게 되는데요. 여러분에게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매일 먹어도 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으신가요?

어제는 삼복 중 하나인 말복이었는데요. 복날에는 더위를 이길 수 있도록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개고기로 만든 보신탕, 염소로 만든 영양탕, 장어구이 등을 먹습니다. 하지만 보양식 순위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닭입니다. 1위는 삼계탕, 2위는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입니다. 이렇게 보양식으로도 인기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도 최애 음식인 치킨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첫째, 다양성, 둘째, 경제성, 셋째, 영양의 세 가지 이유로 치킨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다양성

치킨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후라이드 치킨은 그 나름의 깔끔함과 겉바속촉의 기본을 지킨 메뉴입니다. 여기에 달콤하고 매콤한 양념을 묻히면 양념치킨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후라이드에 치즈가루를 뿌린 눈꽃 치즈 치킨과 허니버터 치킨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두툼한 꽃처럼 튀김옷이 입혀진 크리스피 치킨. 살짝 묻힌 튀김옷에 바짝 튀겨 짭짤한 간장 양념을 묻힌 교촌치킨. 파나 마늘을 토핑으로 올려먹는 치킨. 자극적인 맛이 지칠 땐 옛날식 전기구이 치킨도 있습니다. 이렇게 입맛대로, 취향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 치킨을 좋아합니다.


둘째, 경제성

치킨은 다른 육류에 비해 저렴합니다.

삼겹살 1인분은 16000원 정도 합니다. 4인 가족이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고기 4인분 이상에 밥과 된장찌개, 냉면 등을 해서 1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듭니다. 소고기 외식은 또 어떻습니까? 소고기는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어도 비싼 음식입니다. 하지만 치킨은 아무리 비싸도 2만 원이고 2 마리면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1인 1 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다른 육류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 치킨을 파는 브랜드도 많아져서 부담이 없습니다.


셋째, 영양

치킨의 주재료인 닭은 영양면에서도 훌륭한 재료입니다.

닭고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질이 좋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장과 두뇌발달에 아주 좋습니다. 필수지방산이 16% 이상으로 육류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특히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있어 노화를 막고 피부미용에도 좋습니다. 콜레스테롤도 다른 육류에 비해 낮아 고혈압 환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닭가슴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최고입니다. 닭날개와 닭발에는 콜라겐 성분이 들어있어 주름을 방지해 준다고 합니다. 닭똥집이라고도 불리는 닭모래집은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기 해주고 설사나 야뇨증의 치료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한 닭을 주재료로 만드는 치킨 역시 우수한 음식입니다.


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이라는 주제에 대해 치킨을 말씀드렸고 치킨이 가진 다양성과 경제성, 영양의 세 가지 이유를 주장하였습니다.

‘치느님’,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닭을 죽인 자는 미워하되 튀긴 자는 미워하지 말라', '네가 닭뼈를 보았을 때 먹은 치킨이 양념인지 후라이드인지 모르게 하라'.

이렇게 치킨과 관련된 명언의 수만큼이나 사람들의 치킨에 대한 애정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치킨은.... 사랑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기억에 남는 즉흥연설은

"배우자는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라는 주제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자와 결혼하고 싶나요?"의 반대 버전이죠. 천연덕스럽게 발표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떠올라 옮겨 적으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 내 배우자는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 >

"자기야~~ 돈 많이 벌어와야 돼~~~?"

제가 아침마다 남편에게 하는 말입니다.

"자기야... 이번 생은 망했어..." 저희 남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배우자는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하러 나온 OOO입니다.

이 주제를 보자마자 저는 '야호!' 하며 '이 주제는 딱 나의 것이구나~'라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저희 남편은 이번 생은 망했다며 늘 다음 생을 고민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남편은 다시 태어나도 반! 드! 시! 저와 결혼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부터 첫째, 플라세보, 둘째, 성장, 셋째, 최초 선택의 기준, 이 세 가지를 이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플라세보 효과

남편은 저로 인해 삶을 긍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플라세보 효과란 의사가 효과 없는 가짜 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는데,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하죠. 전 의사가 된 심정으로 이번 생은 망했다는 남편에게 꾸준히 약을 치고 있습니다. "여보~~ 당신이 최고야~", "난 어쩜 이렇게 결혼을 잘했을까?", "잘하고 있어, 잘 될 거야~". 그러면 남편은 금세 헤헤헤헤 거리며 긍정 모드로 변신합니다. 이미 남편은 제가 주는 약에 중독이 되어서 다음 생에도 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성장

남편은 저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저는 남편에게 집안일이란 본인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줍니다. 처음엔 귀찮아하고 싫어했지요. 하지만 본인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가사에 동참하도록 함으로써 이제는 집안일을 해야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빨래가 쌓여있으면 돌리고 싶어 졌고, 다 말라있으면 개서 정리하고 싶어 졌습니다. 저 덕분에 남편은 무한한 마음의 평화와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본인의 성장을 위해 저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셋째, 최초 선택의 기준

남편이 저와 결혼한 이유는 제가 이뻐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웃겨서'입니다. 때로는 저를 "돌+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처음 선택했던 그 이유 그대로 저는 최대한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와도 제가 던지는 몇 마디에 빵빵 터지는 남편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저의 유머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다음 생에도 그 기준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의 주제에 대해 저는 플라세보, 성장, 최초 선택의 기준, 이 세 가지를 들어 말씀드렸습니다.

크럼볼츠 박사는 "계획된 우연"이론에서 말했습니다.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연한 사건'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서 개인의 진로에 연결된다고요. 저는 남편의 다음 생을 위해 이번 생의 우연들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걸 운명이라고 생각하겠죠?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표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많습니다. 태도, 몸짓, 정돈된 언어와 말투, 탄탄한 논리,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전 여기에 더해 '유머'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메시지라도 재미요소가 빠지면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유머만 남아도 문제지만 유머가 빠지면 여운도 안 남습니다. 


즉석연설 쓰기를 할 때 요구하는 것도 '재미, 교훈, 감동'이 세 가지중 하나를 넣어달라는 것입니다. 밋밋한 글에 생기를 넣어줄 수 있는 요소를 찾아 고민하다 보면 글의 깊이와 맛이 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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