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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1. 2019

찬성과 반대를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고요?

디베이트는 토론의 한 종류지만 일반적인 토론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평소 생각, 소신대로 주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죠? 여러분들이 말했던 여러 논란거리 중 하나로 토론을 해볼까요?

여러분 중, 난 탕수육은 반드시 소스를 부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두 명이네요?

그렇다면, 아니다! 탕수육은 소스에 찍어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역시, 요즘엔 찍먹이 대세군요?

부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냥 먹으면 너무 딱딱한데 부어먹으면 적당히 부드러워져서 좋아요~"

"소스가 골고루 묻어있어서 더 맛있어요~"

"고급 중국집에 가면 처음부터 부어서 나와요~ 엄마가 그러는데, 원래 탕수육은 부먹었대요~"

"맞아요. 메뉴판 사진에도 보면 소스가 부어져 있잖아요."

찍먹파 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봐야겠죠?

"소스를 묻혀 먹어도 되고 그냥 먹어도 되고 먹는 사람 마음대로, 취향대로 먹을 수 있어요~"

"소스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요."

"탕수육은 튀김요리예요. 소스를 묻혔을 때 눅눅해지는 게 너무 싫어요. 바삭한 튀김을 즐기고 싶어요."

"저 같으면 친구들이 부먹 찍먹 고민할 때 빨리 처먹할래요~"


역시 우리는 먹는 이야기 앞에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죠? 지금 바로 중국집에 주문전화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네요. 이렇게 탕수육을 부어먹을 것인가, 찍어 먹을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기호가 뚜렷하지만 디베이트를 한다면 그 기호와 소신을 버리려야 돼요. 여러분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왼쪽에 앉은 학생들은 부먹팀, 오른쪽에 앉은 학생들은 찍먹팀이 된다고 해볼게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찍먹이었는데 이렇게 반으로 나누어 한쪽팀은 무조건 부먹이 좋다는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상대측이 되는 순간 스위치를 탁 켜듯이 입장을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될까요? 이렇게 디베이트에서 찬성, 반대 입장을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맡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 양측 의견을 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요. 사자성어로 '역지사지'라고 해요. 억지로 떠맡게 됐지만 그 입장에서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고민하다 보면 '아, 찬성에게도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반대팀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몰랐네...' 하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돼요. 완전히 마음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면 대화가 좀 더 평화로워지겠지요?


두 번째 이유가 있어요.

처음에 제가 물어봤을 때 부먹을 주장하는 친구들은 두 명 정도였지요. 그대로 토론을 진행한다면 스무 명이 넘는 찍먹파를 상대로 두 명은 힘겨운 토론을 해야 했을 거예요. 수적으로 열세라는 건 논리를 구축하고 주장을 하는데 아무래도 불리니까요. 그래서 디베이트는 양쪽 모두 같은 인원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교실에서 단체로 디베이트 할 때도 똑같이 반으로 나눠 한쪽은 찬성, 한쪽은 반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조건을 공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생님~~ 그럼 양측 의견을 다 반영해서 탕수육의 반만 소스를 뿌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되겠네요. 탕수육 부먹 찍먹처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들만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게다가 음식의 기호는 서로가 다르다고 해도 크게 상처를 받거나 주는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토론을 해도 입장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체로 감정이 상한 채로 뒤돌아서기 마련이지요. 정치, 종교 문제는 가족들과도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 들어봤지요? 예를 들어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다고 해볼까요? 

"여자도 군대 가야죠. 왜 남자만 갑니까? 우리 남자들은 너무 억울해요."

"맞아요. 초등학생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힘이 세요! 완전 조폭이라고요!"

"그건 너네가 맞을 짓을 하니까 그렇지!!!"

"저 봐요! 우리도 한 대 때리고 싶지만 남자가 때리면 학폭이라고 하고 여자가 때리면 우리 보고 참으라고 해요."

"지금은 그렇지만 좀 더 크면 남자들이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지잖아요. 아무래도 나라를 지키는 건 남자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자들은 생리도 하고 아기를 낳기 위해 몸을 지킬 필요가 있어요."

"점점 아기를 낳지 않아서 출산율도 낮아지고 있는데 뭘. 군대 안 가려는 핑계지!!"

"여자들도 가야 한다면 가면 되죠 뭐. 그런데 여자들이 군대에 가면 바꿔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닐까요?"


여성의 군입대와 관련된 문제로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 이렇게 남녀 싸움이 돼버려요. 남자들은 억울해하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 때문에 어이없어하죠. 그러다 보면 이렇게 서로 기분이 상한채 토론이 끝나버려요. 왜 그럴까요? 나의 주장은 곧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상대의 주장이 곧 상대의 평소 생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토론을 하면서 그 주장과 근거에 집중하기보다는 '헐, 쟤 원래 저렇게 생각하는 애였어?',  '내 주장을 저렇게 반박하다니. 날 싫어하나?'라고 생각하며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싸우게 되지요. 그런데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똑같은 주제이지만 분위기가 달라져요. 


디베이트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맡은 입장에서 주장을 펼쳐야 하고 상대팀이 말하는 것에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상대팀 친구들의 생각이 아니라 그 팀이 맡은 입장의 주장과 근거일 뿐이거든요. 우리 팀의 주장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오로지 주장과 근거의 논리에만 집중하면 돼요. 상대가 공격하는 건 내가 아니라 우리 팀이 주장한 내용의 허점, 오류거든요. 서로가 서로의 논리적 허점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감정을 다칠 이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디베이트에서 찬성, 반대 입장을 임의대로 정하는 세 번째 이유예요. 감정을 다치지 않는 안전한 장치를 제공하는 거지요. 그렇게 됐을 때 더 논리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걸 어떤 친구는 "내 마음의 반역"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전 절대 찬성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반대인데, 찬성을 맡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몇 번을 생각해도 찬성 측 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찬성을 맡는다는 건 제 마음에 대한 반역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 힘든 일을 하게 되면, 마음에 반역이 되는 일을 하게 되면 생각이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딱딱했던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고 굳어있던 생각도 점점 여유로워질 거예요. 디베이트가 주는 선물입니다. 



* 송코치 단상

'찬성, 반대의 입장을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평소 갖고 있던 신념을 버려야 하는 일이니까요. 어려운 주제라면 찬성이든 반대든 어차피 다 모른다며 상관없어 하지만 생활 밀착형 주제의 경우, 격렬히 저항하기도 합니다. 끝까지 입안문을 안 쓰고 버티는 아이도 있지요. 

"선생님~ 찬성 측에도 반대 측으로 넘어오고 싶은 아이가 있는데요, 저랑 맞교환하면 안 되나요? 그러면 양 팀의 인원수가 맞잖아요."

이렇게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아이가 있으면 살짝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찬반 입장 하나도 못 정하게 한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이것도 폭력 아닐까?'라고 고민하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그렇게 한 명의 소원을 들어주다 보면, 손가락 하나로 겨우 막고 있던 둑이 무너져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저도 바꿔주세요, 저도요~'라며 아우성을 치겠죠.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찬반의 입장을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정해진 입장에서 주장하도록 만든 이유가 뭘까요?"라는 질문에 4학년 교실에서 만난 한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요~"


교실 뒤에 계시던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이 빵 터졌습니다. 저만 빼고요. 실은, 저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빵 터졌고 당황했지만 동요하지 않은 척을 해야 했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했군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자기 맘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아요~ 각자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토의, 토론, 디베이트가 필요한 거지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잡고는 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남편은 그러더군요.

"그 애가 우리보다 낫네. 벌써 세상 이치에 통달했다니."

세상은 정말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걸까요?

세상은 생각보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까요? 

많은 고민을 던져준 4학년 아이가, 그날의 스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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