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과 입안 교차질의가 끝나면 '반박'이라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어요. 쉽게 말해, 상대팀의 입안에서 나왔던 주장과 근거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겁니다.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죠. 학생들은 이 순서를 가장 어려워합니다. 아무 준비도 안 됐는데 뭘 어떻게 반박하냐며 말이죠. 그래서 보통 상대방의 주장을 반대로 말하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입안에 대해 이야기했던 <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라는 주제에 찬성 측이 '중독의 위험이 있다'를 주장했고 그 근거로 의학박사의 인터뷰를 들었다고 해볼게요. 준비가 안 된 반대 측의 반박자는 주로 이렇게 말해요.
"중독의 위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라고요.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 나누면 결론이 안 나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면 그건 디베이트 쟁점에서 빠져야 하는 주장이 되지요.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주장하려면 반대 측에서도 적절한 근거를 대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능성만 추측하고 끝내버립니다. 그렇다면 반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되는 근거를 제시해야 돼요."
"자세히 설명해 줘야 돼요."
맞아요. 자세한, 구체적인 근거, 증거를 제시해야 해요. 마치 법정에 선 검사와 변호사라고 생각하면 돼요. 디베이트에서 찬성과 반대 측은 각각 검사와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용의자 A가 법정에 섰어요. < 살인 사건 용의자 A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라는 주제로 디베이트를 하는 상황이죠. 검사 측은 범행 도구에 묻어있는 용의자의 지문, 목격자의 증언, 범행 현장 CCTV 등을 증거로 제시하겠지요. 변호인 측에서는 어떤 증거를 대야 할까요? "용의자의 지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목격자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만 늘어놓아서는 설득력이 없어요. 범행 추정 시각 용의자의 확실한 알리바이, 용의자 지문이 범행도구에 묻을 수 있던 다른 정황, 목격자 증언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해야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디베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서로가 증거를 갖고 겨루어야 합니다. 상대가 꼼짝 못 할 근거를 보여줘야 판사 역할을 맡은 심판과 청중이 우리 팀을 믿고 손을 들어주겠지요. 상대팀의 주장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다면 그건 상대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우리 팀의 무능함과 준비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거지요. 물론 무조건 모두 인정 못하고 동의 못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아요. 상대팀의 주장이나 근거에 동의하는 부분도 일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완벽히 동의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하죠. 그렇다면 반박을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준비를 철저히 해야 돼요."
철저히 준비한다는 건 뭐죠? 뭘 어떻게 하면 철저한 준비가 되는 걸까요?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돼요."
자료 조사만 많이 해두면 될까요?
"많이 읽어봐야 돼요."
그렇죠. 읽어야죠. 읽기만 하면 반박을 잘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 써놔야 돼요."
어디에 써두면 좋을까요?
"종이?"
종이에 써야죠. 어떤 종이냐면 입안문이라는 형식의 종이에 써두는 거예요. 반박 때 쓰기 좋은 내용은 대부분 우리 팀의 입안문, 나의 입안문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입안문을 쓴다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입안문을 쓰기 위해 조사한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정리하는 과정이 곧 공부예요. 그 과정을 성실히 수행하면 반박에 쓰일 내용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지요.
* 요약
반박과 반박 교차질의가 끝나고 나면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에만 있는 특별한 순서가 있어요. 바로 '요약'이지요. 요약은 말 그대로 앞에 나왔던 내용 중 요점만 정리해서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요점만 정리하는 거라면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요약이 완전히 같을 수밖에 없겠지요. 똑같은 내용을 반복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순서가 될 테지만 우리가 하게 되는 요약은 좀 달라요. 오늘 디베이트에서 가장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철저히 우리 팀의 입장에서 우리 팀이 어떤 부분에서 더 나았는지, 상대팀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를 알려주는 거예요. 누구한테? 심판과 청중에게.
양 팀의 주장이 세 개씩이었더라도 쟁점은 한 두 개로 모아지기 마련이에요. 양 팀의 주장 세 개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진짜로 동의가 안 되는 부분, 정말이지 이건 이해가 안 된다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죠. 친구랑 싸울 때도 그렇잖아요.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 문제는 어쩔 건데?" 하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그게 디베이트의 핵심 쟁점이 되는 거예요. 핵심 쟁점에 대해 우리 팀은 이렇게 논리적이고 다양한 근거를 확실하게 들었는데 상대팀은 그러지 못하더라, 우리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하더라, 상대측의 반박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잘 방어했다, 게다가 이런 근거도 또 제시할 수 있다, 하면서 재반박까지도 첨가할 수 있어요.
요약은 디베이트에서 심판과 청중에게 전체 그림을 보여주는 순서예요. 양 팀이 공을 주고받을 때 고개를 이쪽저쪽 돌려가며 관전하느라 정신없던 심판과 청중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저희 팀의 공격 성공률이 65%였어요. 상대팀은 중간에 작전이 실패하고 실수가 잦았지만 저희 팀은 팀워크도 좋았고 무엇보다 방어를 잘했어요. 특히 반박과 교차질의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했는데, 그거 보셨나요?'라고 말하듯이 말이죠.
* 마지막 초점
마지막초점은 퍼블릭포럼 디베이트의 가장 마지막 순서예요. 마지막이라는 것은 우리 팀의 입장을 호소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얘기예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딱 2분 동안만 더 해보라는 것이죠. 그러니 앞에 했던 말을 다시 하기엔 아까운 시간이에요. 그렇다고 새로운 주장이나 근거를 또 제시하는 건 앞에 했던 내용에 집중하고 있던 심판과 청중에게 혼란만 더 줄 뿐이지요. 그러니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 중에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는 시간, 머리와 가슴에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해요. 논리의 대결로 팽팽했던 디베이트 시간을 감동적이고 멋지게 마무리하는 연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여기서 다시 검사와 변호사가 되는 겁니다. 법정의 최후진술을 할 때처럼 심판과 청중을 향해 호소하는 거예요. 현재 디베이트 하는 주제와 관련해 심판과 청중의 고민이 깊은 이 순간, 우리 팀이 강조하는 이것만을 꼭 기억해 달라고 하는 거죠. 그러려면 심판과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만하며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아요. 속담이나 명언,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도 전략이지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길 잃은 외뿔고래가 흰 고래 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요.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
이렇게 우리 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은유와 비유를 적절히 활용해 발언한다면 훨씬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