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잘 들을 수 있다.
여러분은 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서로 말하는 거요."
그렇다면 대화의 기본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잘 들리게 또박또박 말하는 거요."
"욕 쓰지 않는 거요."
"상대를 배려하는 거요."
"예의를 갖추고 말하는 거요."
모두 잘 알고 있네요. 서로가 예의를 갖추고 말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잘 들어주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경청의 경은 기울인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마음도 몸도 기울여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고 상대가 말할 때는 상대가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입은 잠시 침묵하고 있어야 해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나의 다음 말을 이어가야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대화가 이어져요. 주거니 받거니 사이좋게 말이죠.
디베이트에서 듣는다는 건 조금은 다른 목적이 있어요. 친구와 이야기하는 대화가 아니라 상대측 논리의 허점을 찾기 위한 듣기지요. 그러려면 좀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들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기록해야 해요. 디베이트 대회 영상을 찾아보면 알 수 있어요. 디베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상대팀의 발언을 들으면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쓰고 있는 모습 말이에요. 그렇게 쓰는 동시에 생각도 해야 하죠.
'지금 저 발언에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아까 입안에서 했던 발언과 지금 반박에서 하는 발언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는 걸? 우리 팀의 세 가지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군.'
들으면서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반박도 할 수 있고 교차질의도 할 수 있어요. 기록하지 않으면 발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 뭐였더라?" 이 말만 하다가 끝나버리죠.
집중해서 듣고, 들으며 기록하고, 기록하며 생각하는 것은 수업을 들을 때도 유용한 방법이에요. 디베이트를 통해 듣기 훈련을 한 학생들은 들으면서 핵심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메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 송코치 단상
디베이트 수업 중 학생들은 다양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의미 있는 주장부터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대부분 발표나 토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 함축적으로 말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코치는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이상적인 발언으로 재탄생시켜주어야 합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뭐? 우리가 열심히 말한걸 개떡 같다고 한 거야 지금?"이라고 분노할 학생들~~ 워워~~
맛은 좋지만 생긴 모양 때문에 손이 가지 않는 개떡을 잘 다듬어 맛난 떡으로 보여주는 것이 코치의 역할임을 강조하는 표현이에요~~
혼자만의 생각과 언어에 갇힌 학생들이 있습니다. 혹은 너무 장황하게 주저리주저리 말하다 보니 핵심이 무엇인지 본인도 잊어버리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를 코치인 저는 알아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아~ 친구는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죠?"라고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얻는 효과는 두 가지입니다.
일단, 발언을 한 학생은 '아, 선생님이 내 말을 잘 듣고 계셨구나. 역시 디베이트 선생님이라 무슨 말인지를 잘 이해하시는구나? 덕분에 덜 창피한걸?'이라고 생각하며 코치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됩니다.
둘째, 듣고 있던 학생들은 '와~~ 저 친구 얘기가 저런 내용이었어? 어떻게 저렇게 깔끔히 정리를 할 수 있지? 선생님 대단하신데?'라며 코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코치 역시 학생들의 생각, 주장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하나하나 꼼꼼히 들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논리로 재탄생시켜줄지에 대해서도 재빨리 고민해야 합니다. 수업시간 내내 '놓지 마! 정신줄'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청'을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은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코치가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시간 침묵해야 합니다.